
병역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의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특별한 이들’이 병역을 이행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부와 권력, 명예에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실천 사례로 떠받들어진다. 최근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장남 지호씨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해군 장교로 입대하자, 재계에서 “공동체를 위한 모범 사례”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 개인의 결단에 박수를 보낼 수는 있지만, 이 행보가 특별한 귀감이라며 호들갑 떠는 현실이 씁쓸하다.
최근 5년간 병역의무 대상자 중 국적 포기자는 1만8000명을 넘었다. 그중 다수는 미국·캐나다·일본 국적을 택했다. 반면 해외 영주권자 가운데 자원입대한 이는 같은 기간 2800명 남짓이었다. 오죽하면 이런 불균형 속에서 ‘해외에서 태어나 복수국적을 가졌지만, 군복을 입었다’는 사례가 주목받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 모른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영국 해리 왕자는 왕실의 귀공자 신분임에도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투입돼 2차례 복무했다. 그는 “동료 병사들과 다르지 않다”며 위험한 최전선으로 향하곤 했다. 프랑스의 엘리트층, 일본 왕실 구성원들의 자위대 복무, 미국 정치인 자제들의 입대 사례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회자한다. 한국에서도 ‘스타의 병역’은 늘 논란거리였다. 연예인 병역기피, 특혜성 보직, 연예병사 근무지 이탈이 사회적 분노를 샀다. 그런 상황에서 보란 듯이 해병대를 자원입대한 현빈 등이 칭송받곤 했다. 빌보드 차트 1위 석권을 이유로 병역 면제 논란을 빚었던 방탄소년단 사례는 우리 사회가 병역을 둘러싼 공정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웅변한다.
20세 남자라면 당연시되는 군 복무가 특정인이 하면 특별한 미덕으로 부각되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그늘이 그만큼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역설한다. 이러나저러나 묵묵히 제복을 입는 청년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병역이 누구나 당연히 지는 책무이자 공정한 의무로 자리 잡을 때, 진짜 신뢰와 존중이 회복될 것이다.
이동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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