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필모그래피에서 ‘긍정적이고 밝은’ 혹은 ‘사랑스러운 멜로’ 캐릭터들로 사랑받았던 배우 박신혜(30)가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살아있다’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이색적이다. 침착하면서 강단 있고, 어두운듯한데 활력이 넘친다. ‘#살아있다’에 앞서 촬영을 마쳤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을 잠시 미룬 스릴러 영화 ‘콜’에서도 그가 전작 ‘피노키오’ ‘닥터스’ ‘상속자들’에서 보여준 색깔과는 다른 서늘함이 엿보인다.
그러니 2020년은 배우 박신혜의 또 다른 발전상을 확인하는 해인 셈이다. 2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신혜는 “배우로서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에 대한 갈증은 늘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표현할 수 있는 감정과 장르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느낀다”며 “이번 영화는 장르적으로는 속도감과 박진감이 넘치지만, 캐릭터적으로는 (이전과 달리) 힘을 빼고 연기한 작품이었다”고 설명했다.
‘K좀비’ 열풍을 잇는 영화는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갑자기 타인들을 공격하면서 통제 불능이 된 도시를 그린다. 박신혜는 극에서 데이터와 와이파이, 문자나 전화 등 모든 통신이 차단된 상황에서 준우(유아인)와 함께 아파트에 고립된 유빈 역을 맡았다. 유빈은 끔찍한 재난 상황에서도 실생활에 쓰이는 도구들을 활용해 생존을 향한 도전을 시작한다.
박신혜는 이 작품에서 거친 액션을 선보인다. 로프를 타고 아파트 4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가 하면, 그로테스크하게 내달리는 좀비들을 향해 아이스픽(낫처럼 생긴 등산용품의 하나)을 내리꽂는다. 박신혜는 “세트장 연습을 병행했고, 전문가분들과 합을 맞추다 보니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며 “안전하게 촬영했다”고 전했다. 몸을 아끼지 않는 그의 열정을 보여주듯 최근 연이어 액션 드라마를 촬영 중인 그의 양팔에는 상처와 멍이 가득했다.
영화는 액션만 강조되는 다른 좀비물들과는 달리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이들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좀비의 공격으로 인한 긴장과 생존에 대한 고민을 교차시키면서 영화는 서사를 탄탄하게 직조해나간다. 박신혜는 “스릴러인데, 생존에 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영화”라며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개인적으로 고립되어가는 요즘 복잡한 감정들을 털어낼 수 있는 시원한 작품일 것 같다”고 조심스레 관심을 당부했다.
촬영 현장에서는 상대역의 유아인이 큰 힘이 돼줬다. 박신헤와 마찬가지로 10대 때부터 연예계 생활을 해온 유아인이기에 그가 건넨 이야기는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박신혜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도 했지만,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며 “내가 ‘로맨틱 코미디’ 혹은 ‘한류’와 같은 타이틀을 얻기까지 인간 박신혜로서 정말 많은 애를 썼겠다는 말을 해주는데, 가슴이 저미고 또 한편으로 고마웠다”고 떠올렸다. 2018년부터 공개적으로 연애를 이어오고 있는 동료 배우 최태준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공개 연애임에도 이런 이야기는 늘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최태준과) 잘 만나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차곡차곡, 튼튼히 쌓아 올린 기와집 같은 인상을 풍긴다. 과감한 변신을 택하기보다는 조금씩 장르를 넓히면서도, 또 성실하게 배우로서의 외연을 넓혀와서다. 앞으로도 같은 방향성으로 배우의 길을 걷고 싶다는 박신혜는 “과거를 돌아보면 아쉽고 부족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일인 것 같다”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면서도 무리한 변화는 지양하는 그런 충실한 길을 걷고 싶다”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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