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새 합의안 승인을 미루기로 했다. 이로써 영국은 예정된 시한인 이달 31일에 브렉시트를 단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가디언·BBC 등에 따르면 영국 하원은 19일(현지시간) 브렉시트 새 합의안 승인투표에 앞서 보수당 출신 무소속 올리버 레트윈 경이 내놓은 수정안을 찬성 322표 대 반대 306표로 통과시켰다. 레트윈 경은 당론에 반대하며 ‘노딜(합의 없는) 브렉시트 방지법’인 ‘벤 액트’에 투표해 지난달 보리슨 존슨 총리에 의해 출당 조치됐다.
레트윈 경의 수정안은 존슨 총리가 유럽연합(EU)과 마련한 새 합의안을 승인하기에 앞서 브렉시트 시행법이 의회에서 확정되도록 했다. 노딜 브렉시트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 수정안이 통과되면서 새 합의안 승인투표가 무의미해졌고, 존슨 총리는 수정안 표결 직후 이뤄질 예정이었던 승인투표를 결국 취소했다.
이번 투표 결과는 존슨 총리에게 큰 정치적인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하원이 수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존슨 총리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줬다고 보도했다. BBC는 이번 패배가 영국이 이달 말 EU를 떠날 것이라고 수차례 공언해온 존슨 총리에게 큰 좌절이라고 분석했다.
수정안이 통과됐으므로 존슨 총리는 벤 액트가 명시한 대로 이날 오후 11시까지 EU에 ‘브렉시트 3개월 연기’를 요청해야 한다. 2020년 1월 31일까지 미뤄달라고 하는 것이다. 벤 액트에는 19일까지 브렉시트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을 경우 존슨 총리가 EU에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레트윈 경은 존슨 총리의 합의안을 지지한다면서도 ‘이달 31일’ 시한을 맞추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적인 정책”으로 수정안을 내놨다고 밝힌 바 있다. 승인투표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이 가결됐더라도 이행법률 제정 등의 절차를 완료하기까지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합의안을 지지했던 일부 의원들이 마음을 바꿔 이행법률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상원에서 합의안이 발목을 잡히는 등의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즉, 브렉시트 예정일인 31일까지 관련 절차를 마치지 못하면 의도하지 않은 ‘노딜’이 발생할 수 있음을 우려한 조치다.
존슨 총리는 그러나 수정안 통과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를 연기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가디언과 AP통신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투표 결과를 듣고 “EU와 지연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며 법도 나에게 그렇게 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 나는 EU의 친구와 동료들에게 지난 88일 동안 말해온 대로 ‘더 이상의 연기는 영국, EU, 민주주의에 나쁘다’고 밝힐 것”이라고 했다. 이는 법적으로 문제 있는 발언이라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총리는 이제 법을 준수해야 한다”면서 “그는 더이상 자신의 안이 통과되게 하려고 노딜 브렉시트로 하원을 협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이컵 리스-모그 하원 원내대표는 하원의장이 허락할 경우 21일 승인투표 개최를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수정안 표결에서 야당 의원들은 물론 전 보수당 출신 무소속 의원 중 10명이 찬성표를 던졌지만, 노동당 의원 6명과 노동당 출신 무소속 의원 5명이 정부와 함께 반대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다음 주 승인투표가 열리면 존슨 총리가 과반인 320표를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존슨 총리가 EU탈퇴법을 고쳐 승인투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이행 관련 법률을 통과시키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제정한 EU탈퇴법을 통해 비준 동의 이전에 정부가 EU와의 협상 결과에 대한 하원 승인 투표를 반드시 거치도록 했다.
이날 브렉시트 새 합의안 승인투표는 오전 9시30분 존슨 총리의 연설을 시작으로 몇 시간의 토론 끝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존슨 총리는 1982년 4월 3일 이후 37년 만에 열린 ‘토요일 하원’에서 자신이 EU와 도출한 합의안을 지지해 달라고 하원의원들을 설득했다. 그는 “이제 이 일을 끝낼 때”라며 EU 탈퇴일을 예정일인 이달 31에서 미루는 것은 “영국을 좀먹는다”고 역설했다.
새 합의안은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내놓았던 협상안에서 대부분 변동이 없다. 관건은 EU 회원국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의 통행 및 관세 문제다. 합의안에 따르면 영국 전체가 2021년부터 EU 관세동맹에서 나가되 북아일랜드만 사실상 잔류해야 한다.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은 북아일랜드와 영국 본토 사이가 분리된다며 반대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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