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갑다. 반가워 정말. (아버지랑) 똑 닮았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2일 오전 전주시 효자동에 있는 전북지방경찰청 로비. 노부부가 검은 머리 조카를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였다. 한국말이 서툰 조카는 그저 ‘고맙다’는 말만 하며 울먹였다.
41년 전 프랑스에 입양됐던 제시카 브룬(47)씨가 생전 처음 고모 박모(78‧여)씨‧고모부 김모(82)씨와 상봉했다.
고모는 “울지마”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며 조카를 꼭 끌어안았다. 조카에게 꽃다발을 안긴 고모부는 “(양부모가) 잘 키워주셔서 고맙고, 이 자리를 만들어 준 (김형민 전북경찰청 민원)실장님과 정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북경찰청 직원들은 손뼉을 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47년 전 헤어진 아버지를 찾아주세요.”
지난 2월, 독일 선박설비 전문회사에서 선박검사관으로 일하는 브룬 씨는 전북경찰청에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 신청서를 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일부러 경남 거제도에 있는 한국사무소 파견 근무를 신청했다.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간 근무할 예정이었다. 그 사이 전북경찰청에서 답이 왔다. “고모를 찾았다”고.
경찰은 브룬 씨 어머니가 전주예수병원에서 사망했다는 얘기를 바탕으로 여러 경로로 찾은 끝에 전주에 고모가 산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브룬 씨의 아버지는 2009년 78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였다.
조사 결과 브룬 씨는 1972년 2월18일 전주에서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그의 어머니는 출산 뒤 건강이 악화돼 젖도 떼지 못한 딸을 남겨두고 한달여만에 세상을 떠났다.
홀로 양육이 버거웠던 아버지는 병원의 도움을 받아 딸을 익산에 있는 영아원으로 보냈다. 영아원에서 6년을 보낸 아이는 프랑스의 한 가정으로 보내졌다. 온화하고 인자했던 양부모는 먼 나라를 날아와 품 안에 안긴 딸을 아끼고 사랑했다.
브룬 씨는 12살 때 양부모를 따라 스페인 테네리페 지역으로 이사한 뒤 해양 공학을 전공하고 현지 한 해운회사에 취업했다. 2005년부터 노르웨이에 있는 한국 조선사에서 검사관으로 일했다.
하지만 2013년 스페인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양부모를 한꺼번에 잃었다. 큰 슬픔과 상실감속에서 친부모를 찾아야겠다는 의지를 품었다.
이후 주함부르크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 2월엔 전북경찰청까지 방문했다. 기자회견을 자처해 어디에선가 보고 있을 아버지에게 편지를 띄웠다.
“아버지를 만난다면 안아주고 싶어요.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친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다행히 경찰의 도움으로 전주에 사는 고모를 만나게 됐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감동 깊은 자리다. 참 반갑다. 고마워.”
고모는 중년의 조카 손을 꼭 잡은 채 “이건 기적”이라고 했다.
‘박난아.’
브룬 씨는 한국 이름도 되찾았다. 그의 부모는 갓 태어난 딸에게 ‘난아’라는 예쁜 이름을 선물했었다.
브룬 씨는 “주위에서 ‘이제 포기해라’고 했는데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나게 됐다”며 “정말 기쁘고 다시 한번 경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