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찬 신임 당대표(66)는 더불어민주당의 최다선 현역 의원이자 국무총리까지 지낸 잔뼈 굵은 정치인이다.
1952년생인 이 대표는 충남 청양군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일찍이 서울로 상경해 중학교,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그 과정에서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80년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돼 두 번 옥살이를 했다. 대학을 졸업하기까진 무려 14년이 걸렸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이 대표는 19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첫 발을 들였다.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 17대 국회의원까지 5번 연속 당선됐다.
그는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정권 교체에 공을 세웠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통일민주당의 노무현, 이인제 의원과 함께 ‘송곳’ 질의로 스타정치인으로 발돋움 했으며, DJP 연합 당시 정책 공조 협상에서 성과를 거두면서 ‘선거 전략가’로도 이름을 날리게 된다.
이 대표는 정부에서도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대중정부에선 교육부 장관, 노무현정부에선 국무총리를 각각 역임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엔 강한 권한을 가진 책임총리로 일했다. 이 대표는 총리 시절 국회 질의에서 야당과 공개 설전을 마다하지 않아 ‘버럭 총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19대 총선 때 국무총리 시절 세종시 건설을 직접 지휘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종특별자치시에 출마해 당선됐다.
민주통합당 첫 지도부였던 한명숙 지도부가 19대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2012년 당대표로 당선되기도 했지만, 18대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당대표 대행을 맡기고 사퇴했다.
이 대표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지도부가 세종시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하면서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서도 당선되면서 그는 7번의 선거에서 한 번도 지지 않고 전승한 국회의원이 됐다.
이 대표는 이후 같은 해 9월 민주당에 복당했으며, 당내에서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의장을 맡았다.
지난해 대선에선 문재인 대선후보 선대위원장으로, 6·13 지방선거에선 추 대표와 함께 수석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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