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발해 독대를 신청한 문무일 검찰총장 앞에서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문 대통령은 문 총장과 이철성 경찰청장, 관계부처 장관 등과 함께 오찬을 하면서도 수사권 조정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15일 오전 11시30분부터 30분간 수사권 조정안을 두고 문 총장과 면담했다. 면담은 문 총장의 요청으로 이뤄졌으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배석했다. 문 총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의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발 기류와 정서를 전달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수사권 조정안 발표가 임박한 상황에서 검찰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경찰은 수사에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받아야 한다”며 “기소권을 가진 검찰은 사후적, 보충적으로 경찰 수사를 통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사권 조정을 관철시키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문 총장, 이 청장,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 수석과 1시간30분 동안 오찬을 함께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왜 국민들이 똑같은 내용을 가지고 경찰과 검찰에서 두 번 조사를 받아야 하는지가 나의 오래된 문제의식”이라며 “추가 조사는 어쩔 수 없지만 경찰에서 받았던 조사내용과 똑같은 것을 검찰에서 되풀이하는 것은 국민의 인권침해”라고 강조했다. 경찰 수사 재량을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검찰은 경찰 수사 이외 보충적 조사에 집중하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수사권 조정 논의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조직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검찰이든 경찰이든 다들 미흡하게 여기고 불만이 나올 텐데 구성원들을 잘 설득해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해외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을 예로 들며 “국정원이 정보 수집이나 부당한 수사를 하지 않고 해외정보 수집에 역량을 집중한 결과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큰 역할을 했다”며 “조직이 바뀌면 당장 불만이 나올 수 있지만 국정원 사례를 보면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게 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경찰에게는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병행 추진, 검찰에게는 대검찰청 산하 인권옹호부(가칭) 신설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 청장에게 “자치경찰제는 법이 마련돼야하는 만큼 국회의 선택을 존중하라”고, 문 총장에게는 “피의자, 피고인, 피해자 등 검찰 수사와 관련된 사람 모두의 인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검에 설치될 인권옹호부는 검찰 내 인권보호관 제도 등 산재해 있는 기능을 대검 차원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하는 부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강력한 수사권 조정 의지를 재확인함에 따라 검찰의 반발이 예상된다. 문 총장의 사의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사의 표명은 없었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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