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30일 주민등록번호 변경제도가 시행된 후 처음으로 변경 결정이 내려졌다. 주민번호 착오로 인한 정정은 전에도 있었지만 범죄 악용 등 2차 피해가 우려돼 변경을 허용한 것은 1968년 11월 주민번호가 처음 부여된 지 50년 만에 처음이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이하 위원회)는 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정기회의를 열어 총 16건을 심사한 끝에 9건에 대해 변경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9일 밝혔다.
신청이 인용된 주요 사유는 보이스 피싱(파밍 포함)으로 인한 피해가 4건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명의도용으로 인한 피해 3건, 가정폭력으로 인한 피해 2건 등의 순이었다.
신청인 A씨는 이메일을 확인하던 중 뜬 금융감독원 팝업창에 접속해 안내에 따라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예금 계좌번호 및 비밀번호, 보안카드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한 후 300여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해당 팝업창이 금감원이 아닌 인터넷사이트 사기(파밍)범이 만들어 놓은 가짜였던 것이다.
B씨는 21년간 사실혼 관계의 남편으로부터 상습 폭행을 당하다 딸과 함께 숨어 살며 계속 주거지를 옮겼지만 번번이 남편이 찾아오자 추적을 피하려고 주민번호 변경을 신청했다.
위원회가 주민번호 변경이 인용된 신청인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면 지자체는 새 주민번호를 부여하게 된다.

새 주민번호는 13자리 중 생년월일과 성별을 제외한 뒤 6자리(지역번호, 등록순서, 검증번호)가 바뀐다. 변경된 주민번호는 복지, 세금, 건강보험 등 모든 행정기관에 통보돼 자동으로 변경된다.
행안부에 따르면 주민등록번호 변경제도 시행 이후 지난 4일까지 501건의 변경 신청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먼저 신청한 16건을 우선 심사했다.
구상 위원회 심사지원과장은 “위원회 1, 2차 정기회의에서는 심사기준을 확정하고 변경을 위한 사실조사 대상을 결정하느라 심사가 늦어졌지만 앞으로는 변경심사가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위원회 정기 회의는 월 2회 열리는데 회기마다 60여건 정도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차 피해가 우려돼 주민번호가 변경되는 것은 1968년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된 후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가족관계등록사항의 변경(출생일자, 성별 등)이나 번호 오류의 경우에만 정정이 가능했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제도는 지난해 5월 주민등록법 개정을 거쳐 지난 5월 30일부터 시행됐다. 주민번호 유출로 인해 생명, 신체, 재산, 성폭력 등의 피해를 입거나 피해가 우려될 경우 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변경할 수 있는 제도다.
변경 신청을 하려면 신청서와 입증자료를 갖춰 주민등록지 읍·면·동 주민센터에 신청하면 된다. 입증자료는 주민번호가 유출딘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 피해를 입은 기록, 피해의 개연성을 소명하는 녹취록이나 진술서 등이다.
위원회의 심사 및 의결을 거쳐 변경 여부가 결정되며 청구가 인용되면 새 주민번호가 부여된다.
범죄경력 은폐, 법령상 의무 회피, 수사나 재판 방해 목적, 선량한 풍속 위반 등의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청구가 기각된다.
홍준형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 위원장은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의 불안감이 주민등록번호 변경 결정으로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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