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들 귀양살이에도 ‘금수저’· ‘흙수저’ 존재했다

Է:2017-07-1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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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의 귀양살이에도 이른바 ‘금수저’와 ‘흙수저’가 존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한국국학진흥원이 펴낸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7월호는 시대적 상황에 맞춰 ‘귀양’을 소재로 다뤘다(사진).

귀양(歸養)은 유배(流配)와 같은 뜻으로 조선시대 관리들이 죄를 저지른 경우 죄인을 먼 변방이나 외딴섬에 보내 살게 하던 형벌을 말한다.

조선시대의 귀양은 중국 대명류의 오형(五刑) 체계인 ‘태장도유사’(笞杖徒流死, 태형·장형·도형·유형·사형)의 5가지 형벌 가운데 하나로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인 유형(流刑), 유배였다.

이때 죄의 크기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장형이 따랐으며 고려시대와는 달리 형벌의 적용이나 유배지역에 대해서 신분 구별이 없었다.

‘담’ 7월호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귀양의 다양한 모습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기사와 웹툰 등으로 들려주고 있다.

유배지로 귀양길을 떠나는 죄인의 모습과 유배지에서의 삶의 모습 역시 사극에서 흔히 봤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다.

유배지가 정해지는 과정은 죄가 무거울수록 유배지까지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며 유배지가 결정된 후 죄인은 스스로 알아서 유배지까지 이동해야 했다. 유배지는 대부분 외진 곳에 있었기에 먼 거리까지 걸어가거나 말을 사서 타고 가는 등 유배인이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모든 비용을 국가가 지불하는 최근의 형벌제도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유배길까지 죄인을 압송하는 책임자로 압송관이 결정되었지만 압송관이 죄인을 포승줄에 묶은 채로 압송하는 것이 아니라 압송자와 죄인은 따로 출발했고 유배경로 중간에 있는 역점에서 만나 귀양길을 잘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정도였다.

더욱이 압송관이 유배길에서 필요한 물품 또한 유배인이 제공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압송관 중에는 무리한 금품 요구를 하며 무례히 구는 폐단도 허다했다.

유배인의 배경과 권세에 따라 유배경로에서 겪게 되는 상황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관직 복귀 가능성이 높은 유배인의 경우 유배경로지의 수령과 동료 관료들이 각종 물품과 금전, 향응을 제공했다.

경종 대의 윤양래는 너무 많은 금품을 제공받아 말이 그 무게를 감당치 못하고 쓰러지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

반면, 복귀 가능성이 낮은 관료나 관직이 없는 유배인은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며 고통스러운 귀양길을 떠나야 했다.

순조 대의 심노숭은 유배 노정과 유배지에서 사용할 금전 27냥을 마련해 유배지로 떠났다.
그는 이 돈으로 유배 노정에서 말을 빌리고 숙식을 해결했으며 작별인사를 나온 친척과 지인들에게 소소한 물품을 지원받는 등 노자를 아끼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마침내 유배지에 도착했지만 압송관이 예상치 못했던 노잣돈을 요구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압송관은 말이라도 팔아서 지급하라며 무례히 굴자 심노숭은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며 어려운 금전사정을 토로했지만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2냥을 지급한다.
유배지에 도착한 이후의 생활 역시 큰 차이가 있었다.

재력이 있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유배인의 경우 상황은 매우 달랐다.
북청으로 유배를 가게 된 이항복은 병마절도사로부터 집과 노비들까지 제공받기까지 했다.

유배인들은 본가에서 보내온 돈으로 집을 구입하거나 지을 수도 있었으며 살림살이도 평소의 일상과 같이 이어나갈 수 있었다.

정약용 같은 명망 있는 학자들이 유배를 오는 경우 오히려 자제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여겨 서당을 여는 등 환대를 받기도 했다.
정약용 같은 명망 있는 학자들이 유배를 오면 자제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여겨 주민들이 서당을 여는 등 환대를 받기도 했다. 다산초당

그렇지만 이런 대접을 받는 유배인은 극소수였으며 대부분 귀양다리(유배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로서의 서러운 삶을 살아가야 했다.

특히 유배지가 된 고을에서는 유배인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유배인을 군식구로 취급하게 마련이었고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고을의 경우 지역민과의 마찰과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유배인이 유배지에 도착하게 되면 관에서는 유배인을 감시하고 그에게 숙식을 제공할 보수주인(保授主人)을 지정해 주게 되는데 혹독한 보수주인을 만나게 되면 유배인들은 굶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정조 대에 주색잡기로 국고를 탕진해 추자도로 유배 간 안조환은 보수주인을 정하기 위해 관원과 집집마다 돌아다녔지만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했다.
억지로 정해진 보수주인집이 방 한 칸이었기에 안조환은 처마 밑에 자리 한 장을 깔고 궁박한 유배 생활을 시작했다.

누더기가 된 옷 한 벌로 사계절을 나고 거친 음식을 먹거나 굶주리기도 하면서 비참한 유배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결국 조롱받으며 동냥을 하는 신세가 돼 새끼줄을 꼬아 짚신과 돗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귀양길에서 겪게 되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소소한 삶의 모습은 양반들이 직접 써내려간 일기류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귀양가는 선비.

이와 같은 귀양길에서 겪게 되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소소한 삶의 모습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구구한 삶의 이야기들은 귀양을 떠난 양반들이 직접 써내려간 일기류에서만 찾을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story.ugyo.net)에
는 조선시대 일기류 237권을 기반으로 총 3670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돼 있다.

매월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해 웹진 ‘담’(談)을 발행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일기류를 소재로 하지만 주제의 선정은 항상 현실과 항상 맞닿아 있다.

7월호의 주제는 ‘귀양’으로 촛불혁명과 관련된 ‘민심, 희망을 품고’, 탄핵판결과 관련된 ‘판결’, 조선시대의 SNS ‘통문’, 대선과 관련된 ‘맞수’, 내각 인선과 관련된 ‘인품’ 등 그 간의 사회적 이슈들에 이어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번 호 주제에 대해 편집장 천준아 작가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국정농단의 장본인들이 속속 법정에 서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내리는 구형이 적법한지에 대해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들의 죄질이 가볍지 않기 때문이며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국민들의 관심을 담아 ‘귀양(歸養)’을 주제로 정했다”고 밝혔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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