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구멍’ 통과하면 어떤 세상 펼쳐질까…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B코스

Է:2014-04-17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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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구멍’ 통과하면 어떤 세상 펼쳐질까…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B코스

화산섬인 제주도 북쪽의 용담동 바닷가에는 용머리 형상의 용두암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 남서쪽의 용머리해안은 용이 바다로 들어가는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산방산과 연결된 용머리해안은 80만 년 전 화산 분출물이 굳은 응회암 지대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지질 명소이다.

지구의 시간을 품은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이 최근 첫 선을 보였다. 지난 주 A코스에 이어 이번 주 B코스를 소개한다.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B코스의 출발점인 용머리해안은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리는 해식절벽이다. 수월봉을 비롯한 제주도의 여느 지질 명소와 마찬가지로 불과 물이 빚은 ‘살아있는 지질학 교과서’로 층층이 색을 달리하는 지층과 구멍이 뻥뻥 뚫린 모습이 요르단의 페트라 협곡처럼 기기묘묘하다. 사막에 위치한 페트라와 달리 용머리해안은 코발트블루색의 바다에 둘러싸여 더욱 신비롭다.

용머리해안에는 그럴듯한 전설 하나가 전해온다. 중국의 진시황이 제주도에 제왕이 태어날 지세를 지닌 용머리해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풍수에 능한 호종단을 파견해 용의 꼬리와 잔등을 끊었다고 한다. 이때 흘린 붉은 피가 지층에 스며들어 용머리해안이 검은색과 붉은색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용머리의 꼬리와 등 부분의 바위에는 칼로 자른 듯 절리(節理)가 발달되어 있다. 3개의 화구에서 분출된 화산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른 흔적이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삼과 멍게 등을 파는 용머리해안을 한바퀴 돌다보면 절벽과 바다에 가로막혀 더는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이 나온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곳에는 지층 사이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서로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구멍을 통과하면 항만대로 불리는 황우치 해변이 드넓게 펼쳐진다. 산방산 동남쪽에 위치한 항만대는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서 모슬포 제2훈련소에 군사물자를 실어 날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발목이 푹푹 빠지는 검은 모래 해변 중간쯤에는 드넓은 퇴적암 지대가 펼쳐진다. 군데군데 바닷물이 고인 퇴적암은 제주의 하늘을 담은 커다란 그릇으로 모래해변을 걷다 지친 지질트레커들에게는 모처럼 만난 단단한 바위가 발걸음을 경쾌하게 한다. 1㎞ 길이의 황우치 해변이 끝나면 지질트레일은 유채꽃이 소박하게 피어 있는 병악현무암지대로 들어선다.

병악현무암지대는 3만5000년 전 병악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9㎞를 흘러내리다 바닷가에서 멈춘 곳으로 주상절리가 발달되어 있다. 주상절리에 둘러싸인 아담한 모래해변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밀의 해변’으로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꽃과 신록이 싱그러운 조붓한 지질트레일은 이내 사근다리 오름을 오른다.

화순해수욕장 옆에 위치한 사근다리는 노란색 퇴적암이 마치 돌이 썩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썩은다리로 불리기도 한다. 옛날에 사계리와 화순리를 연결하는 길이 없던 시절에 유일하게 두 마을을 이어주던 통로로 한때 ‘인연다리’로 불리기도 했다. 사근다리 오름은 병암현무암지대를 비롯해 용머리해안과 산방산, 그리고 형제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로 화순금모래해변 쪽으로 하산하는 길에는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보리수나무가 지천이다.

용천수와 바닷물이 만나는 길이 250m, 폭 80m의 해변은 금빛 모래가 많아 화순금모래해변으로 불린다. 실제로 이 금빛 모래에는 금이 함유되어 있어 1966년에는 금을 채굴하기도 했다. 현재는 수영장을 비롯해 다양한 해양레포츠를 즐기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화순금모래해변 서쪽에는 하강물, 엉덕물, 개물 등 용천수가 흐르고 있다. 특히 하강물은 담수욕장으로 개설돼 한여름에는 수영장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화순화력발전소 때문에 다소 삭막한 풍경이지만 화순은 선사유적지가 발견된 유서 깊은 마을이다. 탐라국 형성 초기의 선사유적지에서는 움집터, 옹관묘, 지석묘 등 439점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됐다. 화순선사유적지에서 황개천과 암벽 아래 위치한 개끄리민소를 지나면 ‘퍼물’, ‘곤물’ 등 식수나 농업용수, 빨래터 등으로 이용되던 용천수 샘터가 즐비하다.

제주도의 토양은 물이 쉽게 빠져 식수를 구하기 어렵지만 해안마을은 지층의 틈새에서 솟아나는 용천수가 많아 제주도의 오아시스로 불린다. 용천수가 마을의 소중한 공동재산이라 아낙들은 빨래를 할 때도 비누나 양잿물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돌담이 아름다운 화순의 오르막을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의 최대 상록수림인 화순곶자왈이 반긴다.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돌과 마구 엉클어져 있는 곳을 일컫는 제주토박이 말이다. 돌과 바위가 많은 곶자왈 지대는 농사짓기에 부적합한 버려진 땅이었으나 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제주의 허파’로 각광받고 있다.

화순곶자왈의 생태탐방로는 1.5㎞. ‘송이’로 불리는 붉은 화산재로 뒤덮인 탐방로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면 밀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상록수가 울창하다. 제주도로 유배를 왔던 추사 김정희가 “밀림의 그늘 속에 하늘빛이 실낱만큼 보였다”고 한 곶자왈 탐방로는 향긋한 피톤치드와 함께 새소리가 심신을 넉넉하게 한다. 화순곶자왈 최고의 풍경은 산방산을 비롯해 일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이다. 전망대 아래에는 분지처럼 오목한 초지에서 소떼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을 그린다.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B코스는 산방산을 한바퀴 에둘러 용머리해안 일대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산방연대를 오른다.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한 연대(煙臺)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일종의 봉수대이다. 산방연대는 용머리해안을 비롯해 지질트레일 A코스와 B코스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전망대로 신혼부부들의 웨딩촬영 장소로도 인기를 모은다.

80만 년 전에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용암과 화산재가 창조한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에는 자연의 시간과 함께 척박한 땅을 일구고 살아온 제주사람들의 혼이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

제주=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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