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 NGO 필리핀 깨끗한 물 구호 사업
지난 2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110㎞ 떨어진 남부 바탕가스주 로사리오시 산이시드로 마을.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의 자그만 체구인 제이슨 세나(17)는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야 한다. 제이슨을 포함한 9형제와 부모가 사용할 물을 떠오려면 그만큼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그는 20ℓ짜리 플라스틱 물통 2개를 대나무에 이어지고 마을에서 20∼30분 거리를 걸어갔다. 이 샘은 마을에서 유일한 식수원이다. 샘과 연결된 호스를 통해 물을 받아야 하는데 좁고 긴 호스 탓에 물을 긷는데 만도 한두 시간씩 걸리는 것은 다반사다. 그는 “아침 일찍 가족들이 씻거나 식사를 하려면 물이 필요하니까 새벽부터 물을 떠와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 쓸 물만이 아니고 마을 사람에게도 물을 떠다가 판다. 20ℓ 물통 하나에 10페소(약 240원)를 벌기 위해서다. 무거운 물통을 어깨에 지면서 허리와 다리도 휘었다. 이런 일을 하루 4번 한다. 그는 물을 뜨러 가지 않아도 된다면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을 말했다.
필리핀은 풍부한 강수량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서 안전한 식수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인구 증가에 따른 수질 오염이 심각하고 1인당 사용 가능한 수자원량도 전 세계 평균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불순한 물과 위생에 관련된 질병이 필리핀과 같은 개발도상국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부기구(NGO)들은 단순히 원주민에 대한 물 공급에서 벗어나 질 좋은 물을 공급하는 쪽으로 구호 방법을 전환하고 있다.
로사리오시에 있는 또 다른 작은 마을인 시티오버슬랏. 겨우 10가구 50여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이곳 역시 식수라곤 마을 중앙에 있는 우물이 전부다. 그마저도 깨끗하지 않아 바로 먹을 수 없어 불순물이 가라앉을 때까지 2∼3시간을 놔뒀다가 사용해야 했다. 바로 마실 경우 철분이 많아 냄새가 나고 설사 등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우물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겼다. 월드비전이 우물에 철분제거필터(Iron Removal Filter)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 필터는 물속에 존재하는 유해한 철 성분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마을 주민들은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더 이상 몇 시간씩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깨끗한 물로 소를 키우게 되면서 덩달아 소까지 건강하게 자라 마을 수입이 늘게 됐다. 마을 주민 에이미 게리랑(38·여)은 “소를 키워 파는 것이 가장 큰 수입원인데 물을 풍족하게 쓸 수 있어 소들도 건강하게 자란다”고 웃었다.
철분제거필터는 이웃한 나소 초등학교(Naso Elementary school) 학생들의 삶도 바꿨다. 지난해 12월 학교에 설치된 철분제거필터로 아이들의 결석률이 현저하게 낮아진 것. 이 학교에서 21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오로라 구나이(51·여)씨는 “우기에는 물이 오염되는 경우가 많아 발열이나 설사 때문에 결석하는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반에 3∼4명은 있었다”며 “하지만 철분제거필터가 동네에 설치된 뒤 이런 일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학교 6학년인 리진 코데로(12)는 “전에는 학교에서 마실 물을 갖고 오라고 했었다”며 “지금은 물에서 냄새도 나지 않고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단순히 철분제거필터를 설치한다고 해서 깨끗한 물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주민들이 제대로 관리해야만 좋은 환경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닐라에서 남서쪽으로 약 55㎞ 떨어진 마라곤돈시 미낙산한 마을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99년 대형 식수시설과 수도를 설치해 600여명이 혜택을 받는 이곳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물을 사용했던 이곳에 대형 식수시설이 설치된 뒤 마을 주민들은 이를 관리하는 법까지 배웠다. 철저한 관리 속에 이들은 심지어 수도세를 걷어 주변 마을로 식수시설을 전파하기도 했다. 시설유지담당인 크리스풀로 디로네스(59)는 “1년에 두 번씩 탱크 청소를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박테리아 검사를 하는 등 수질관리를 위해 힘쓴다”며 “좋은 물을 주민에게 공급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월드비전 바탕가스 지역개발사업장 식수사업 전문가인 더글러스 추아는 “주민들이 책임감을 갖고 시설을 관리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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