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들 대거 유입
팔레스타인이 유엔에서 ‘비회원 옵서버 국가’ 지위를 얻은 29일(현지시간)은 팔레스타인이 처음 비운을 맛본 지 꼭 65년이 되는 날이다.
유대인들은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학살을 피해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대거 귀환했다. 국제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동정 여론이 확산되면서 유엔은 1947년 11월 29일 총회를 열어 ‘팔레스타인 영국 위임통치령’으로 불리던 지역을 아랍지구와 유대지구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가결한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 선언에 주변 아랍국가들이 무력 대응에 나서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터졌다. 이때부터 팔레
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기나긴 악연이 시작된다. 이듬해 휴전과 함께 이스라엘은 종전보다 더 넓은 영토를 편입하게 된다. 1967년 6월엔 ‘6일 전쟁’을 통해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골란고원까지 병합한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사람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었다. 그는 1974년 11월 유엔에서 발언권을 얻어냈고, 유엔총회 결의안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결권을 인정받았다. 유엔의 ‘옵서버 단체’ 자격도 얻어낸 PLO는 1988년 11월 독립국가를 선언했다.
이스라엘과 PLO는 1993년 9월 13일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와 가자에서 일부 병력을 철수했고, 팔레스타인은 자치정부(PA)를 수립했다. 2004년 사망한 아라파트의 뒤를 이어 2005년 1월 마무드 압바스가 PA 수반에 취임했고, 이어 가자에서 모든 이스라엘 주민과 군대가 철수했다.
이후 2006년 이슬람주의 과격 무장정파 하마스가 총선에서 승리하며 가자지구를 통치하게 됐다. PA와 이스라엘은 2009년까지 평화 협상을 계속했지만 결국 서안지구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문제로 협상은 2010년 무산되고 만다. 지난해에도 PA는 유엔 회원국 가입을 신청했지만 유네스코 정회원국 지위 획득에 그쳤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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