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화를 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나는 젊은 시절 교회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약 8년 동안 프랑스에서 산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동안 우리나라 사람과 프랑스 사람들의 차이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대화하는 법이다.
우리나라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한 사람의 말이 끝난 후 다음 사람이 발언하는 게 일반이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발언을 가급적 끊고 발언하는 것이 상례이다. 때문에 여럿이 토론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너 댓 명이 동시에 말을 하여,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제 캐나다에 와서 산 지 1년 남짓 되어 가는데, 캐나다 사람들의 대화술에도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덩치가 100kg은 족히 나갈 듯한 사람들이 말을 할 때에 얼마나 소곤소곤하는지 감탄이 나온다.
가급적 작고 가급적 속삭이는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려고 경쟁이라도 하는 듯하다. 우리 가족은 목조 건물 2층에 사는데, 1층이나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여태껏 성을 내는 것을 본적도 없고, 심지어는 큰소리로 말하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다.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라
나는 어떻게 말하는 것이 보다 예의바르다거나 혹은 보다 바람직하다는 말을 하고픈 것이 아니다. 영적인 삶과 관련하여 어떻게 말하는 것이 보다 유익한가를 따져보고 싶은 것이다. 사막 수도자 에바그리오스라는 분은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혹은 말하지 않는다 해도 마음 속에 화를 품고 있는 자는 하나님께 제대로 기도를 드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에바그리오스를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을 아는 능력인 지성(知性)과, 욕망(慾望)이 생겨나는 부분과, 화(火)가 생겨나는 부분 등 세부분으로 돼 있다고 한다. 욕망이 생겨나는 부분은 다른 말로 욕처(欲處)라고 할 수 있고, 화(火)가 생겨나는 부분은 화처(火處)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욕처(欲處)가 세상에 대한 욕(慾)으로 채워지고, 화처(火處)가 타인에 대한 화(火)로 들끓으면, 지성(知性)이 어두워져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만약 하나님을 바라고(欲) 마귀에 대해 화(火)를 내면, 그 때서야 비로소 지성(知性)이 깨끗해져 바르게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에바그리오스가 지적하기를 사람들은 흔히 마귀에 대해서 화를 내지 않고 사람들에게 화(火)를 내기 십상이라고 한다. 마귀는 화처(火處)로 다른 사람과 다투도록 유도하고 그리하여 하나님께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도록 함정에 빠트린다.
사막의 수도자 에바그리오스는 이런 상황을 아주 리얼하게 표현했는데,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높여 성질을 부리는 그 순간은 바로 ‘개’ 싸움판이 벌어지는 순간이다. ‘개’를 쫒아내지는 못할망정, 마귀에게 속아 ‘개’가 되어 싸운다면 얼마나 초라한가?
에바그리오스는 자신의 말을 실험해 보라고 한다. 큰 소리로 언성을 높인 다음 눈을 감고 기도해 보시라. 화를 냈던 바로 그것 때문에 기도줄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기도줄은 커녕 눈을 감으면 상대방의 얼굴이 떠올라 더 성질이 난다. 화가 나지만, 화를 속으로 삭이거나 상대에게 나지막한 톤으로 말해 보시라. 여전히 기도는 힘들지만 그래도 좀 나을 것이다. 아예 화(火) 자체를 없애 보시라. 마음이 평온하고 깨끗한 곳에 이르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보다 수월해진다(딤전 2장 8절 참조). 거기에다가 욕(欲)조차도 비운다면 기도는 더욱 바른 기도가 된다.
사막의 수도자는 진정으로 깨끗한 기도를 드리고 싶다면 화를 내지 말라고 결론 짓는다. 에바그리오스의 깊은 뜻을 알고 있는 나이지만, 아는 것과 실천은 다른 법! 얕은 내 마음은 때로 화를 못이겨 소리치곤 하는데, 그 때마다 나는 ‘개’ 밥 신세로 전락하고야 만다.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빈 손으로 돌아갈 것”(욥 1장 21절)이라는 욥의 말을 새삼스레 떠올리며, 무얼 더 가지지 못해 성질을 부렸을까 뉘우치곤 한다.
<한영신학대 교수·캐나다 몬트리올대 초청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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