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부흥 우리가” 1945년 한날 한시 개척… 영락·경동·서울성남교회 창립 66돌

Է:2011-12-0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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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부흥 우리가” 1945년 한날 한시 개척… 영락·경동·서울성남교회 창립 66돌

2일 66세 생일을 맞은 세 쌍둥이 교회가 있다. 바로 서울 영락교회(이철신 목사) 경동교회(박종화 목사) 서울성남교회(허정강 목사)다. 1945년 ‘해방둥이’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난 이들 삼총사 교회는 한국교회사의 한 획을 그으며 한국전쟁 이후 사회복지와 교육, 민주화 운동, 장로교단의 분열 등 굽이치는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한국교회 거두(巨頭)들이 개척=교회를 창립한 한경직(1902∼2000, 영락교회) 김재준(1901∼1987, 경동교회) 송창근(1898∼?, 서울성남교회) 목사는 모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출신으로 한국 신학의 선구자들이다. 이들은 1920년대 신학교 교정에서 “한국교회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인물 양성에 함께하자”는 ‘도원결의’를 했으며, 약속대로 한국 기독교 신학 흐름을 이끌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의 거두였던 한 목사는 영락교회를 통합의 장자교회이자 교육과 사회복지, 군선교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그는 월드비전 설립 주역으로 예장 통합 총회장과 숭실대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종교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했다.

김 목사는 1953년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 설립의 주역으로 기장 총회장과 한국신학대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사회 참여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신학자다. 송 목사는 기장 목회자를 길러낸 조선신학교 교장으로 한국전쟁 당시 교회와 신학교를 지키기 위해 서울에 남았다가 납북돼 별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철신 목사는 “교회를 설립한 세 분 모두 미국 유학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면서 후학을 길러내는 데 힘썼던 한국교회의 개척자들”이라면서 “목회와 사역의 개념과 방향은 달랐지만 개인적 야심 없이 하나님 앞에서 복음적 목회와 신학 훈련에 집중했던 지도자”라고 설명했다.

◇일제 침략의 상징적 공간서 개척=재미있는 사실은 세 교회 모두 미군 군정청으로부터 일본 신도(神道)의 종파인 천리교 터를 불하받아 건물을 세웠다는 점이다. 또한 교회 이름도 전도관으로 시작해 특색 있는 목회 영역을 구축했다.

영락교회의 초창기 이름은 ‘베다니 전도교회’였다. 보수적인 미국 북장로교회의 지원을 받은 영락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에서 내려온 월남 교인들로 구성된 교회였다. 따라서 교회는 성전인 동시에 난민들의 생활터전이었다.

진보적인 캐나다연합장로교회의 영향을 받은 경동교회는 ‘성 야고보전도교회’라 해서 사회적 실천을 강조했다. ‘신학은 진보적이지만 신앙은 정통 보수주의’라 주창했던 김 목사의 신학에 따라 교회의 사회적 참여와 에큐메니컬 운동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반면 기장인 서울성남교회는 ‘성 바울전도교회’로 전도 중심의 교회를 추구했지만 납북된 송 목사의 자리가 컸기에 그 특색을 적극 살리지는 못했다.

박종화 목사는 “송 목사님이 계셨더라면 한경직 김재준 목사님을 큰 형님처럼 아우르고 어쩌면 교단 분열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21세기 다원화된 시대 목회자들은 믿음의 선구자들처럼 상호 보완적이며 특성화된 목회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영락교회는 지난 달 27일 기념음악예배를 드렸으며, 4일 감사예배와 임직식을 갖는다. 경동교회는 4일 기념음악회를 개최하며, 서울성남교회도 같은 날 창립기념 예배를 드린다. 영락교회와 경동교회는 지난해까지 강단과 성가대 교류를 추진한 바 있다.

글=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사진=윤여홍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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