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성지순례](22)한국 첫 사립초교 인천 영화초등학교
[미션라이프]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곳. 인천시 창영동 36번지 영화초등학교(교장 오인숙)는 그런 곳이다. 비가 퍼붓던 지난 26일. 교문에 들어서니 고풍스런 3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1911년 완공된 존슨관이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옆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초등학교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두개의 붉은 벽돌 건물은 119년의 역사를 이어온 신앙 교육의 뿌리를 한 눈에 보여줬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초등학교=1869년 8월 미국 오하이오주 페메로이에서 태어난 독실한 크리스천 마거릿 벤젤. 그녀는 22세때 평양을 건너 미지의 나라 조선으로 건너 왔다. 인천에 도착한 그녀를 마중 나온 존슨 목사. 둘은 그렇게 처음 만났다. 존슨 목사의 안내를 받아 서울까지 온 벤젤은 이화학당에서 성악과 오르간을 가르쳤다. 존슨 목사는 배재학당에서 교편을 잡고 문서 편찬과 전도에 힘썼다. 그리고 1892년 존슨 목사는 25세의 나이로 인천 내리감리교회 제2대 담임으로 부임했다.
벤젤도 감리교 여선교부의 명으로 내리교회에 파송됐다. 서울에서 교사 경험이 있던 두 사람은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특히 벤젤은 교육적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조선의 여성들을 위해 신교육을 시켰다. 벤젤은 당시 내리감리교회 강재형 전도사의 딸을 가르쳤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초등교육기관 영화초등학교의 출발이다.
어려움이 많았다. 서양인이 어린이의 간을 약에 쓴다는 말도 안되는 흉흉한 소문에 초기 학생 수는 남자 3명, 여자 2명뿐. 낯선 선교지에서 힘들게 사역하던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던 중 사랑에 빠졌다. 1893년 5월10일 둘은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04년 미국의 자선사업가인 콜린스는 벤젤 여사의 신교육 운동을 지원하겠다며 1000달러를 기부했다. 그 헌금으로 인천 중구 경동 싸리재에 단층짜리 교사를 신축했다. 학생들의 머리를 단발로 깎게 하고, 검정색으로 염색한 교복을 입히는 등 개화에 앞장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또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북돋워주기 위해 미국에서 가져온 나팔, 북, 고물소총 등으로 서구식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학교는 1911년 현 위치에 2층 벽돌집 교사를 마련해 이전했다. 2년 뒤엔 강당까지 건립했다. 100년된 존슨관 1층은 현재 도서실로 운영 중이다. 2, 3층은 옛 교실과 교무실로 사용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집보다 아름다운 학교=“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 3:16). ‘영화(永化)’란 이름은 1900년 이 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던 박용래 선생이 성경말씀에서 인용해왔다. 영생, 영원한 생명을 뜻하는 ‘영(永)’을 따서 학교가 영원무궁토록 발전해 인재를 길러내라는 뜻이다. ‘화(化)’는 ‘된다’란 의미다.
손기정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버린 동아일보 기자 이길용,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박사 김활란, 유아교육의 개척자 서은숙, 교육자 김애마, 미국 줄리어드음대 출신의 김영의, 영화배우 황정순 등이 이 학교를 빛낸 선배들이다.
존슨관 옆 건물엔 119년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의미 있는 사진들을 전시해 놓았다. 설립자 벤젤 여사부터 역대 교장, 믿음의 선배 그리고 학교의 다양한 활동상을 볼 수 있다.
100년을 뛰어넘은 미션스쿨. 그러나 이곳도 한때 폐교 직전에까지 몰리기도 했다. 4년 전 오 교장이 부임했을 때 학생 수는 76명에 불과했다. 가뜩이나 학생이 적은데, 교사의 체벌까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오 교장은 “당시 학생들은 수십 년 전 교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벽에서는 횟가루가 묻어났다. 천정에는 오래된 선풍기가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오 교장은 ‘내가 왜 전교생 1000명이 넘는 안정적인 공립초등학교 교장직을 마다하고, 이곳에 왔을까.’하는 후회도 든 적이 있다고 했다.
“마지막 카드로 나를 부르셨던 겁니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를 문 닫게 하실 수 없으셨겠지요. 물론 제 신앙적 양심에 비쳐 봐도 그랬고요.”
교육청으로부터 감사를 받기 위해 2003년 서류부터 정리했다. 학교에 영어마을을 세우고 교사와 학부모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엄마의 공책’을 실시했다. 적성검사 프로그램 등을 만들면서 교육의 질을 높여 나갔다.
그 결과, 현재 학생 수는 250명.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에 진행되는 ‘어머니 기도’, 저녁 8시 퇴근 후 모이는 ‘아버지 기도’가 큰 힘이 되었다.
벤젤 여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키우기 위해 눈물로 씨앗을 뿌렸다. 오 교장과 학부모들 또한 폐교 직전의 학교를 다시 세우기 위해 눈물로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기도의 힘은 참으로 놀라웠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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