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해설사가 동행하는 탐방예약제… 相生으로 가는 울진 ‘금강송’숲길
상업화 물든 ‘둘레길’ 회복할 대안을 찾아서
생태 탐방로가 변질되고 있다. 방송국의 여행·오락 프로그램에 지리산 둘레길이 등장한 이후 주변에는 펜션과 노점상이 난립했다. 가스 사용량이 2~3배로 늘었고, 주말 하루 매출액이 100만원에 이르는 곳도 있다. 땅값이 오르고 농사 지을 땅이 줄어 농촌공동체가 무너질 조짐마저 보인다. 음식점은 손님이 늘자 메뉴를 도시형 음식으로 표준화하고 가격을 올렸다.
생태와 환경을 빙자한 상업주의적 트레일 붐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경북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은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숲해설사가 동행하는 탐방예약제가 그것이다.
지난 19일 아침부터 잔뜩 구름이 낀 날씨에 바람까지 세차게 몰아쳤다. 금강소나무숲길을 걷기로 한 일행 가운데 한 단체가 날씨 때문에 탐방을 취소했다. 출발점인 경북 울진 북면 두천리 광장 앞에 모인 일행은 탐방객 2명, 숲해설사 2명, 숲해설사 출신으로 지금은 금강소나무숲길 방문자안내센터에서 일하는 정면자 팀장, 녹색연합 배제선 활동가, 기자 2명이었다. 궂은 날씨 덕분에 적정규모의 팀을 이뤘다. 하루 탐방제한 인원이 80명이지만, 30명이 넘으면 원칙적으로 팀을 나눈다. 더 많아지면 숲과 역사보다 사람에게 신경이 쓰이기 쉽다.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은 죽변항에서 봉화 내성장터까지 옛날 보부상이 넘던 12령 고갯길의 처음 네 고개다. 바릿재, 샛재, 너삼밭재, 저진터재가 이름이다. 모두 13.5㎞로 6시간쯤 걸린다,
두천리 금강소나무숲길 입구에서 논에 물을 대는 도랑을 건넜다. 돌다리가 놓인 개울가에는 울진내성행상불망비((蔚珍乃城行商不忘碑)가 서 있다. 바지게꾼의 우두머리인 접장 정한조와 반수 권재만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특이하게 무쇠로 만들었다. 바지게꾼은 무거운 해산물을 지고 좁은 산길을 날렵하게 다니도록 다리를 없앤 지게를 진 보부상을 일컫는다.
좁은 등산로는 가장 좁은 곳의 폭이 1.8m다. 벌목한 금강송을 실은 우마차가 지나갈 수 있게 돼 있다. 흰 쪽동백꽃이 한창이다. 탐방객은 산더덕을 발견하고 기뻐하기도 했다. 울진 출신으로 지금은 대구 지산동에 사는 여성 탐방객은 “고향에 좋은 숲길이 생겼다고 해서 찾아왔다”면서 “퇴직하면 이곳으로 돌아와 지금은 빌려주고 있는 논 10마지기에서 농사를 지을까 한다”고 말했다.
첫 고개인 바릿재 구간도 소나무가 주종이다. 굴참나무도 많았고 단풍나무, 돌배나무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정 팀장은 “이맘때 바람이 불면 멀리서 볼 때 꽃인지 잎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잎이 반짝이는 것이 굴참나무”라고 말했다. 5월 중순 꽃이 귀할 때지만 화려한 층층나무 꽃과 짙은 향기의 고추나무 꽃이 탐방로 주변에서 자주 눈에 들어왔다. 바릿재란 명칭은 소에다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다녔다고 해서 붙여졌다.
출발한 지 1시간 남짓 만에 임도와 만났다. 여기서부터 5㎞는 임도를 따라가는 구간이다. 여름에는 땡볕이 괴롭지만 가을에는 양옆으로 단풍이 무척 곱다고 한다. 고갯길에 한눈에 보아도 고목인 음나무, 굴참나무, 금강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여기서부터 금강송 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과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임도 옆으로 계곡이 펼쳐지고 고추나무 꽃향기가 알싸하다. 녹색연합 배 팀장은 계곡가에서 수달의 배설물을 발견했다. 숲 해설사 정만식(63)씨는 “탐방로 주변에서 산양도 이따금씩 보인다”고 말했다. 철마다 금강소나무숲길을 찾는다는 최모(여·울진읍)씨는 “늦가을 샛재에서 너삼밭재를 넘어가는 길이 무릎까지 낙엽으로 차오르면 넘어져도 푹신하고 고운 단풍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고 말했다.
임도에서 빠져나와 샛재로 넘어가는 길부터 너삼밭재까지가 금강소나무숲길의 핵심구간이다. 이런 옛길을 걸으면 자연풍광과 더불어 역사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과거 호랑이와 산적에 희생되는 일도 많았던 보부상의 애환이 떠오르고 자신도 과거로 돌아가 그들의 삶을 체험해 보게 된다.
고갯마루에는 조령성황사(鳥嶺城隍祠)가 자리 잡고 있다. 바지게꾼들이 잠시 다리쉼을 하며 무사왕래를 기원하던 곳이다. 길옆으로 470년 된 소나무와 가파른 언덕길을 나란히 지키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소나무도 만날 수 있다. 배 팀장은 “여기서부터가 길옆으로 멸종위기종인 노랑무늬붓꽃, 산양 등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핵심구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20일부터 12월 10일까지 금강소나무숲길을 다녀간 사람은 4500여명이다. 하루 80명으로 인원이 제한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예약률 40%는 높은 것이다. 주말에는 거의 꽉 차는 편이다. 사단법인 울진숲길 측은 올해에도 지난 4일 개장한 뒤 6월 중순까지 주말 예약은 모두 찼다고 밝혔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과 남부지방산림청은 3년 전부터 울진에 공정여행 개념의 걷는 길을 조성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이들은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협의체인 사단법인 울진숲길을 창설했다.
탐방인원은 하루에 80명으로 제한하고, 30명 이내로 구성되는 팀마다 숲해설사가 꼭 동행토록 했다. 숲해설사는 마을 주민 가운데 희망자를 뽑아 2년간 훈련시켜 9명을 양성했다. 탐방예약은 1개월∼3일전까지 인터넷으로 접수한다.
금강소나무숲길 조성사업은 ‘공정여행·책임여행’을 지향한다. 자연을 최대한 보호하는 범위 안에서 지역주민에게는 경제적 이윤창출을, 관광객에게는 울진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두천리를 찾는 관광객 가운데 30%가 민박을 했고, 30%가 지역민이 제공하는 도시락을 구매했다. 숙박비는 1인당 1만원, 식사와 도시락값은 5000원이다. 배 팀장은 “도착지점인 소광2리에선 28가구가 막걸리공장을 공동소유하고 있으며, 주막과 펜션도 공동 운영한다”고 말했다.
울진군과 산림청, 그리고 주민들은 금강소나무숲길을 불영계곡, 왕피천, 소광리 금강소나무 생태경영림, 통고산, 덕구온천 등 주변의 산림·역사·관광자원과 연계해 ‘길게 머무르는 여행’을 유도하고 있다. 두천리에서 농사와 민박을 하는 장수봉(59)씨는 “숲길은 현재 1석3조의 효과를 내고 있다”면서 “기껏 1박2일 머무르던 관광객이 숲길 덕분에 50만원 이상 갖고 와 2박3일 이상 머무른다”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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