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서신] 비틀즈 노래를 좋아하던 전직 권투선수 최씨 아저씨
아직도 따가운 햇살이 버겁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을 햇살은 모든 곡식이 익어가는 귀한 기운이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따르고 싶은 청명한 가을입니다.
지난여름 동안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떤 결실을 맺었나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기도 하지요.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초여름 무렵 스물세 살의 젊은이가 권투를 하다가 링에서 쓰러져 하나님의 나라로 가버렸던 가슴 아픈 일이 있었지요.
시합 도중에 상대방 선수의 주먹을 맞고 쓰러진 선수의 기사를 보면서 제 기억 속에 있는 또 다른 권투선수의 허망함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전직 권투선수였던 최씨 아저씨는 우리 동네에서 십년을 넘게 살았으나 동네사람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그런 바람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저씨와 제가 인연을 맺은 것은 비틀스의 ‘렛 잇 비’라는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건설현장에 철근 일을 하러 다니는 아저씨는 힘든 노동을 하셨기에 약을 사러 자주 들르셨습니다. 노임을 받은 날에는 몸에 좋은 영양제를 먹어야 한다며 사가셨고, 힘들게 일한 날에는 파스나 진통제를 사가기도 했지요. 언젠가 아저씨가 약을 사러 오셨을 때 라디오에서 렛 잇 비가 흘러 나왔고 흥얼거리며 따라하던 내게 아저씨는 “저 노래 나도 좋아하는 노래인데, 약사 양반도 좋아하나 보네, 후후후 그럼 우리 친구 먹어도 되겠네”라고 했고 아저씨와 저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저씨는 노동의 무거움을 술로 달랬고, 그렇게 술을 마신 날에는 평소와는 다른 거친 모습으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녀 동네 사람들의 원성을 사곤 했답니다. 밤늦게까지 문 여는 가게가 많은 동네이고 술에 취한 사람 또한 많은 곳이었기에 크고 작은 싸움들로 동네는 밤새 시끄러웠습니다. 싸움에 아저씨는 늘 휘말려 있었습니다. 젊을 적 권투선수였던 아저씨의 주먹은 힘이 있었고 위협적이었습니다. 아저씨의 주먹에 얻어맞은 사람들은 여기저기 터져 병원신세를 지기 일쑤였고 아저씨는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일이 자주 생겼습니다. 피해자와 합의를 보기 위해 어렵게 모아둔 돈을 써버리기도 했으나, 늘 합의금이 부족했던 아저씨를 한동안 동네에서 볼 수가 없을 적도 많았지요.
“잘 지냈어. 나 거기 갔다 왔어.” 맑게 웃는 아저씨는 시나브로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건설현장에서도 반가운 일꾼이 아니었습니다. 거절하는 손길이 많아질수록 아저씨의 주먹은 거칠어지고 감당 못할 사고를 치곤했습니다. 치아가 하나 둘 부러지고, 제대로 꿰매지 않은 얼굴의 상처는 흉이 되어 아저씨의 인상은 날로 험악해졌습니다. 세상과의 끈을 놓아버리려는 아저씨의 망가지는 모습에 제가 동조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암묵적 동의를 해버린 것 같은 불편함이 밀려 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도 만난 이웃에게 사랑을 주고 집에 데려와 살펴 주던 사마리아인 같은 삶을 저는 살 수 없는 걸까요? 피투성이 이웃을 거리에 버려두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걸음을 재촉했던 제사장의 그림자가 제 삶에 살짝 덮여 있음을 보게 됐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었지요.
갈아입지 않은 옷과 온몸에서 나는 악취가 대단한 아저씨가 약국에 들어올 라 치면 음료와 피로회복제를 들고 뛰어나가 바깥에서 아저씨께 드렸으니까요. 영문도 모르는 아저씨는 약사친구가 뛰어나와 환대한다고 좋아했으나 다른 손님이 불쾌해 할까봐 선수를 쳐서 움직였던 것이지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아저씨와 나 사이에 시시때때로 벌어졌습니다.
일자리가 없던 아저씨는 술에 취해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면서 괜스레 시비를 걸기도 하고, 멀쩡한 남의 가게 유리창을 야구방망이로 깨버리기도 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거나 아저씨를 찾아와 항의하는 일조차 없었지요. 아저씨가 유리 값을 변상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기껏해야 유치장에서 벌금형을 사는 일이니 오히려 후한이 두려운 동네사람들은 유야무야 넘어가는 게 편했던 게지요.
그러던 아저씨에게 아주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아저씨가 세 들어 살던 집의 주인이 아저씨한테 기한이 다 됐으니 나가달라고 한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얘기 하겠습니다.
이미선
‘건강한약국’ 매대 앞에 서면 집창촌 거리가 펼쳐진다. 그는 종일 그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살아간다. 이웃 누구에게나 마음의 문을 열어놓는 수더분한 ‘우리들의 집사님’.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치료해 주는 상담자이다. 1961년 이곳 하월곡동에서 태어나 이 동네 한성교회를 섬긴다. 숙명여대 약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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