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아기코끼리 한쌍 보냅니다”… 스리랑카 코끼리 한국에 오는 사연

Է:2010-05-2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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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아기코끼리 한쌍 보냅니다”… 스리랑카 코끼리 한국에 오는 사연

다음달 코끼리 암수 한 쌍이 우리나라에 들어온다.

스리랑카에서 전세 비행기를 타고 온다.

가임능력이 있는 암코끼리가 없어서 코끼리의 씨가 마를까 애태우던 국내 동물원들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이번에 오는 코끼리 2마리는 스리랑카 대통령이 한국에 주는 선물이다.

특별한 선물

코끼리는 특별한 선물이다. 국가 간 친선의 표시로 종종 사용된다. 지난 13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이 오랜 우방인 북한에 코끼리와 기린, 얼룩말 등 야생동물을 선물할 것으로 알려져 환경보호론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동물원 시설이 열악해 생존 위협에 처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스리랑카가 기증하는 코끼리는 둘 다 어린 것으로 알려졌다. 스리랑카가 어린 코끼리를 쌍으로 외국에 주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동안 선물용으로 사용한 것은 노령의 코끼리였다. 마힌다 라자팍세 스리랑카 대통령이 코끼리를 보내기로 결정하며 각별한 우정을 표시한 곳은 한국의 한 시민단체다. 김해성(49) 목사가 대표로 있는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가 코끼리 접수처.

지난 17일 만난 김 목사는 “올 3월 스리랑카 방문 때 대통령에게서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주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코끼리를 어떻게 한국으로 가져올지 엄두가 안 났고, 설령 가져온다고 해도 어디다 쓸까 싶어서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까 동물원 코끼리가 사라질 위기라는 거예요. 그래서 스리랑카 대통령 비서에게 전화를 했죠. 코끼리를 달라고, 그리고 이왕이면 암수 한 쌍으로 달라고. 그랬더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어린이대공원(서울 능동)이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동물원 코끼리는 11마리. 이 중 5마리가 암컷이다. 하지만 암컷 대부분이 노령화돼 임신능력을 상실했다. 이대로 가다간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졌고, 동물원들은 물론 외교통상부까지 나서서 인도 캄보디아 태국 등을 상대로 젊은 암코끼리를 들여오려고 애를 써왔다.

코끼리는 돈을 주고 거래할 수가 없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에 따라 보호 대상 동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를 들여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증인데, 스리랑카가 흔쾌히 응한 것이다.

대통령과의 우정

라자팍세 대통령이 김 목사에게 준 선물은 코끼리만이 아니다. 수도 콜롬보 중심부에 15㏊ 규모의 부지를 제공했다. 김 목사는 이곳에 한국어학교, 병원, 컴퓨터교실 등을 만들기로 했다. 공사는 7월에 시작한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또 김 목사를 통해 고속도로와 주택 건설, 쓰레기 소각장 및 열병합 발전소 건설, 유전 개발 등에 한국 정부나 기업이 참여하도록 요청했다.

65세의 라자팍세 대통령은 지난 1월 재선에 성공했다. 2005년 시작된 첫 대통령 임기 중 26년간에 걸친 타밀반군과의 내전을 종식시켰다. 재선 후 그의 국정목표는 경제개발에 집중돼 있다.

김 목사와 라자팍세 대통령의 인연은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목사는 경기도 성남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어요. 경기도 광주에 갔다가 오는 길이었는데, 버스 정류장에 얼굴이 시커멓고 의복이 허름한 외국인 2명이 서 있는 게 보였어요. 왜 여기 있느냐고 물으니까 얼마 전 스리랑카에서 한국에 왔고 직장을 구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차에 태워 우리 센터로 데려가서 재워주고 직장도 구해줬어요. 그 친구들을 시작으로 우리 센터에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센터에 드나드는 스리랑카 노동자 수가 200명에 이르렀다. 김 목사는 2003년 4월 스리랑카 설날을 맞아 작은 파티를 준비했다. 그때 한 스리랑카 노동자가 그 파티에 자신의 작은 아버지를 초청해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작은 아버지는 당시 스리랑카 야당 국회의원이었다.

“초청을 해서 극진하게 대접했죠. 그분이 돌아간 뒤 우리를 스리랑카로 초청해서 갔다 오기도 했어요. 그 양반이 나중에 대통령이 된 거예요. 그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외국인 노동자 한 명을 안아준 것뿐인데.”

2004년 말 스리랑카에 지진해일(쓰나미)이 와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김 목사는 고려대의료원 의료진과 같이 가서 한 달간 진료지원을 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설득해 430만 달러어치의 의료품과 생필품을 전달했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당시 국무총리였다.

김 목사는 스리랑카에 갈 때마다 국빈 대접을 받는다. 올해도 1월과 3월, 두 차례 스리랑카를 방문했고, 그때마다 대통령을 만났다. 지난 4월 서울 구로구 도림천변에서 열린 스리랑카 설날 행사에는 스리랑카 국가 서열 3위 농업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가 참석하기도 했다.

“대통령께서는 절 보고 늘 ‘목사님’ 그래요. 스리랑카는 불교 국가고, 제가 개신교 목사라는 걸 알지만 종교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거죠.”

방글라데시 국빈 행사 ‘준비위원장’ 맡은 이유

지난 16일 서울 장충동2가 장충체육관에서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2010 방글라데시 페스티벌’이 열렸다. 총리가 한국에서 일하는 자국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주한방글라데시대사관이 주최한 행사에서 김 목사는 사실상 준비위원장 역할을 했다. 노동부, 한국산업인력공단 등과 협조해 장소 섭외부터 축하 공연, 음식 준비 등을 도맡아 했다. 방글라데시 국빈 행사를 한국 사람이 치러낸 것이다.

“방글라데시 총리가 한국을 찾은 것은 15년 만이라고 해요. 방글라데시대사관에 비상이 걸렸죠. 대사관에서 페스티벌을 해야 하는데, 그만한 규모의 행사를 치러본 경험이 없어 난감했던 모양이에요. 제게 도와 달라고 요청해 왔죠.”

김 목사는 15년 전부터 방글라데시대사관과 친분을 유지해 왔다. 매개는 역시 외국인 노동자들. 김 목사는 한국에서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시신을 오랫동안 수습해 왔다. 영안실에 방치된 시신을 찾아 방부 처리를 한 뒤 함석관에 실어 특수화물 항공권을 사서 본국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김 목사가 지금까지 처리한 외국인 노동자 시신은 1500구가 넘는다고 한다.

“제 얘기가 대사관에 흘러들어갔던지 어느 날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왔더군요. 점심을 한번 얻어먹었어요. 만나서 들어보니까 대사관 사정이 참 딱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컴퓨터도 사주고 그랬어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 관련한 일도 대신 처리해주고.”

지난해 12월 18일, 유엔이 제정한 ‘이주민의 날’에 방글라데시대사관은 김 목사를 불렀다. 그리고 제1회 이주민의 날 행사를 하면서 그에게 공로패를 하나 줬다.

하시나 총리는 16일 방한했다. 18일 한국-방글라데시 정상회담도 가졌다. 방글라데시 방한단에는 국가개발기구 책임자도 끼여 있었다. 그 책임자가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를 찾아왔다. 김 목사에게 한강 개발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김 목사를 방글라데시로 초청했다.

“그들 중 대통령 나오지 말란 법 없다”

김 목사는 20년 가까이 외국인 노동자 지원사업을 펼쳐왔다. 무료상담으로 시작해 쉼터와 교회, 병원 등으로 지원영역을 넓혔다. 최근엔 외국인 노동자 자녀를 위한 학교를 짓고 있다. 김 목사는 그간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좋은 인연을 쌓아왔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대통령의 조카가 됐고, 어떤 이는 큰 사업가가 됐다. 스리랑카 대통령과 우정을 나누고, 방글라데시 총리를 접대하는 김 목사의 모습은 국내에 들어 온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크고 멀리 확장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에서 돌아간 노동자들은 그 나라에서 다들 잘살고 있어요. 사장이 되거나 고위 관료가 된 사람도 여럿이죠. 또 상당수가 무역거래를 해요. 상대국은 당연히 한국이죠. 언어가 되고, 인맥이 있고, 물품을 잘 아니까.”

그는 한국에 쓰레기나 고물이 남아나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가면 도로에 한국 차들이 많아요. 한글 표지판 그대로 달고. 중고 자동차뿐만 아니라 오토바이, 공장 기계, 심지어 농업용 비닐까지 우리가 쓰던 거 다 가져가요. 한국을 경험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나라에 가서 한국 물건들을 수입하는 거예요.”

김 목사는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그 나라 최고 엘리트들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며 “그들 중 대통령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젊은 시절 미국에서 접시 닦으면서 공부했던 사람 아니에요? 미국인의 눈으로 보자면, 외국인 노동자였던 셈이죠. 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초대 대통령이 된 거예요.”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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