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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영석] 올바른 토론문화 정착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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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공공기관들의 입찰을 도와주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교육용역 제안 요청서를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 요청서는 한 군(郡)의 이장(里長)들을 대상으로 지역 리더의 리더십 교육을 의뢰한 것이었다.

예상과 달리 리더의 건강관리 방법 그리고 선심성 관광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지역 문화탐방 등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해 지역 발전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촉진자적 리더십(Facilitative leadership)을 증진시키기 위한 교육보다는 선심성 술잔치가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해 보였다.

이는 우리나라가 낮은 수준의 토론문화에 머물러 있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 왜 우리나라의 토론문화는 답보상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요한 세 가지 이유를 꼽으라면 유교문화, 역사적 배경, 교육의 부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유교문화권에 속해 왔다. 그런데 진리를 토론을 통해 발견하고 확인하는 것으로 인식해 왔던 서구와 달리 유교에서는 진리가 탐구와 확인의 대상이라기보다 실천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에 토론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또한 일제시대와 독재정권 같은 권위적인 체제를 겪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토론에 참여,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주장하기보다는 권력을 가진 소수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아픔이 있다. 더구나 서구 사상이 범람하고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인 지금도 토론문화 발전이 미비하다는 것은 제대로 된 교육 부재에 원인이 있다.

이장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교육이 지역탐방이나 건강관리법 등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토론문화가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조직의 리더들이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리더에서 촉진자적 리더로 변해야 한다. 갈등보다는 협력을, 요구보다는 참여를, 계획보다는 실천을 중시하는 사회는 이를 통해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달 방문한 캐나다의 ICA(Institute of Cultural Affairs)는 촉진자적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는 물론 전 세계의 토론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조직의 리더는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집단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고 합력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이 퍼실리테이션이고 이를 수행하는 리더가 촉진자적 리더다. 학교, 기업, 지역사회, 더 나아가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토론은 승패가 존재하는 이원론적 대결이 아니라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윈윈의 창조적 활동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결과에 기여했다고 생각할 때 책임감을 느끼고 그 결과를 진정으로 이행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리더들도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리더에서 촉진자적 리더로 변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갈등보다는 협력을, 요구보다는 참여를, 계획보다는 실천을 중시하는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점점 벌어져만 가는 계층 간 갈등,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 세대 갈등, 지역 갈등, 새롭게 등장하는 다문화·다인종으로 인한 갈등, 또한 장차 이뤄질 통일로 인해 엄청난 갈등이 발생할 것을 생각해보면 성숙하고 올바른 토론문화 정착보다 시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영석 ORP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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