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라이프] 조향록(90) 초동교회 원로목사는 한국 신학계의 최고 원로이다. 33세에 초동교회 담임이 돼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의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시켰다. ‘교회는 세상 안에 서 있는 예수의 몸’이라는 신념으로 기독교인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엘리트적 정체성을 강조해왔다. 또 소외된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의 공의 실천에도 헌신했다. 시인이기도 한 조 목사는 종교에 있어서는 ‘우리들의 목사’, 예술의 길에서는 ‘동도의 빛’, 삶의 길에서는 ‘우정 깊은 친구’라는 수식어를 달 정도로 깨끗하고 소탈하면서도 다양한 삶을 살아 왔다.
2010 새해 인터뷰를 위해 초동교회에서 만난 조 목사는 1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은 분 같지 않게 매우 열정적이고 정력이 넘쳐 보였다. 그는 기독교인의 정체성 확립과 목회자의 책임을 강조했다. 대담=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이승한 부장
◇201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새해를 어떤 마음으로 맞으셨습니까?
내 나이 90에 이제 젊은 시절처럼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는 과거대로 다 아름답고 감사하다.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 이제부터 내게 하루는 젊은 시절 1년만큼 소중한 시간이다. 하루하루 나 자신을 어떻게 지키며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 좀 더 깨끗하고 바르게 나 자신을 하루하루 가꿔가고 싶다.
사람이 일생 살다가 마지막에 잘 죽으면 모든 잘못이 다 커버된다. 구약의 삼손은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됐다. 하지만 그는 긴 세월 동안 타락한다. 한 지도자가 타락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의 노예가 되고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삼손은 마지막 죽으면서 블레셋 지도자들을 다 죽인다. 20년 넘게 지도자가 되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것을 한번의 죽음으로써 다 감당했던 것이다. 나처럼 노년에 은퇴한 분들은 그 시간을 쉬는 시간이라 여기지 말고 잘 죽도록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목사님의 새해 소원은 무엇입니까?
내 소원은 남북의 통일이다. 꿈에도 소원이다. 내 소원이 몇 가지 있지만 통일은 항상 첫 번째였다. 통일은 한반도 7000만 민족의 통일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통일은 21세기를 맞은 인류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21세기 역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상당히 시간을 두고 생각한 것이다.
통일을 그토록 소망하지만 목사가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나. 기도밖에 없다. 그래서 예배에서 기도순서를 맡으면 한 번도 민족 통일을 위한 기도를 빼먹은 적이 없다. 50년이고 100년이고 기도하겠다고 다짐했다. 수천 년간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서 만납시다’란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통일을 위한 나의 기도도 그런 것이다.
◇함경남도 북청이 고향이셔서 아무래도 통일에 대한 염원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통일되어서 두고온 가족과 재회하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일이다. 난 민족적인 차원에서 통일을 얘기하는 거다. 8·15 해방 때가 내 나이가 24세였다. 그 이전에 난 신학교를 졸업했다. 그때 생각하면 나라 잃은 백성은 사람이 아니다. 나라 없는 민족은 사람 대접을 못받는다. 새파란 청년이 꿈을 가지고 나라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할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절망감 같은 게 있었다. 난 고향이 없는 국민이다. 한반도에 이산가족이 1000만 명이다. 그런데 이북 사람 중에 국회의원 된 사람이 있나. 오늘날 우리는 나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라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다.
◇목사님은 평생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오셨는지요?
난 복음 전파하는 목사로서 목회하는 일에 조금도 의혹이 없었다. 목사를 바로 하면 나라도 살고 사회도 살고 교육도 된다고 믿고 살았다. 목사가 마스터키라고 생각했다. 조금 조숙했는지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내 생애를 완전히 결정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피난중에 강성갑 목사가 설립한 한얼중학교에서 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원래 신학교 선배가 적임자였는데 바빠서 못한다고 해서 나한테까지 온 것이다. 나 또한 몇 차례 사양했지만 결국 떠안게 됐다. 30명 되는 학생들이 4년만에 2000명으로 불어났다. 초급 대학까지 키우겠다는 계획으로 터를 닦고 건축자재를 구했다. 하지만 폐병 때문에 결국 교장을 그만두고 노무현 대통령 고향 마을의 정토원에서 요양을 했다. 거기서 다시 목회의 소명을 받았다. 그러니까 내 삶의 이유는 오직 하나, 목사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 변천에 큰 역할을 해온 한국 교회가 요즘 지도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난 한국 교회에 대해 그렇게 비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한국이나 한국 교회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 교회가 잘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난 이걸 절대로 믿는다.
◇수많은 설교를 해오셨는데 목사님께서 설교를 통해 강조해오신 핵심 내용은 뭐였는지요?
내 설교의 제목은 80% 이상이 성경 말씀 그대로다. 초점은 텍스트(성경 본문)에 두고, 그것을 사람들의 상황에 대입하려고 한다. 목사들은 하나님 말씀에도 전문가가 되어야 하지만 세상도 잘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 목사님들은 성경도 많이 읽었을 뿐만 아니라 한바탕 인생을 살다고 늦게 목회를 한 분들이 많다. 인생이 뭔지 아는 분들이다. 그러니 좋은 설교를 할 수 있었다.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하나의 표본이라고 본다. 자기 말을 거의 섞지 않고 성경을 가지고 정리해서 연결한다. 이것은 신학적 배경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요즘 목회자들 중엔 성경 사전 가지고 뜯어다 맞히는 경우가 있다. 내용은 같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신학이 필요하다.

◇목사님께서는 설교에서 의인이란 말씀을 많이 쓰셨습니다.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의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의인을 강조한 것은 엘리트 의식을 말하기 위해서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은 의인 10명이 없어서였다. 이것은 구약적인 의인 해석이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속죄 은총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온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을 의인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지극히 적은 무리라고 한 것은 창조적 소수를 말씀하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역사의 기수라고 할 수 있다. 별들이 순환하는 것은 중심에 태양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전체 인간 역사에 있어서 태양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교회는 엘리트 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없이는 안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방향이 없이 어떻게 비행기나 배가 가는가. 자동차가 키가 없이 어떻게 운행을 하는가.
하나님이 한국 민족을 사랑하셔서 300년 전에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와 가톨릭, 개신교가 정착하게 됐다. 한국밖에 이런 민족이 없다. 이것은 한국 민족을 통해 인류 역사의 큰 사역을 하기 위해 이루신 축복이라고 난 확실히 믿고 있다. 그걸 목사나 교회가 의식해야 한다.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기수인데 중간이나 꼬리에 서면 안되는 것이다. 교회 목사들이 이 세상의 죄악 때문에 문제가 어떻다고 얘기하는데 국민 3분의 1이 교인인데 바깥을 향해서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된다.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고 사회에 문제가 많은 것은 오히려 나 때문이라고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 사랑이 많이 식은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게 복음과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사랑은 반드시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사랑은 평화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전쟁 안하고 사는 길은 평화다. 그것밖에는 길이 없다. 북한은 북한대로 원자탄을 만들고 남한은 남한대로 군사력을 늘리고 있다. 남한은 얼마 전 8억 달러를 들여서 무기 계약을 체결했다. 지금 구입하는 무기는 10년 후면 고철덩어리가 된다. 국민 세금이 고스란히 공무원들의 손에 의해 이런 바보짓에 쓰이는 것이다.
국민이 주인인데 지금까지 한번도 우리나라는 국민이 뜻을 모아서 ‘우리 나라를 이렇게 하겠다’고 한 일이 없다. 국민이 제 권리를 찾아야 한다. 국민들이 모여서 우리라를 어떤 나라로 만들 것인가를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
◇교계 원로로서 한국 교회에 대해 고언(苦言)하신다면?
목사들이 신앙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목사들이 언제부턴가 호텔이 아니면 모임을 갖지 않는다. 교회 식당도 많은데, 왜 호텔 다니면서 몇 만 원 짜리 밥을 먹으며 돈을 낭비하나. 회장을 뽑는다는데, 회장 하고 싶다고 돈쓰고 다니는 사람들은 무슨 설교를 하더라도, 천사의 소리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총회장 할 때는 총회장 하는 게 부끄러워서 누구한테 얘기도 못했다. 목사가 되는 게 하늘보다 더 두렵고 영광스런 일인데 거기에 무슨 회장인가. 그 사람들은 군수 되려고 목사를 버릴 사람이다. 목사가 됐으면 이건 천하가 몰살해도 뺏길 수 없는 일이다. 목사들이 이걸 깊이 자각해야 한다<끝>.
조향록 목사는 1920년 8월3일 함경남도 북청군 거산면 건자포에서 아주 가난한 집의 둘째로 태어났다. 불신자였던 부친이 예수를 믿고 신유의 은사를 받은 다음 교회를 세우자 당연히 목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흥과 원산의 성경학원을 나온 그는 20세에 조선신학원(한신대 전신)에 입학해 송창근 김재준 목사에게서 신학을 배웠다. 43년 풍상읍교회 전도사를 시작으로 목회에 나선 조 목사는 51년 경남 진양 한일중학교 교장으로 잠시 일했고, 그 다음해에는 한일고등학교를 설립했다.
54년 서울로 올라온 조 목사는 리더스다이제스트 한국어판을 간행하던 이주운 주태익 등과 함께 다방교회를 열어 예배와 문학의 접목이라는 새로운 패턴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다방교회에는 김형식 김동진 이성삼 이희호 임인수 정규 등 다양한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54년 초동교회에 부임해 1년만에 판잣집 예배당을 2층 벽돌예배당으로 건축하고, 60년대 초에는 제네바대학교에 유학했다. 65년 다시 교회에 부임한 조 목사는 교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71년 현재의 위치인 종로 3가 파키디리 극장 뒤편에 지하 2층 지상 6층의 현대식 건물로 예배당을 건축했다.
71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을 지낸 조 목사는 76년 한국신학대학 학장으로 부임해 오늘날 한신대학교로 인가받는데 기초를 놓았고, ‘생명의 전화’운동을 벌여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친구가 됐다. 자나 깨나 통일을 외치며 통일운동에 헌신한 조 목사는 민주평통종교분과위원장, 현대사회연구소이사장 등을 지냈다. ‘기독교’ ‘복음은 땅 끝까지’ ‘시편강화’ ‘역사의 지표’ ‘사랑의 빛 사이를 지나며’ ‘팔십자술’ 등의 책을 저술했다. 정리=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
조향록 원로목사 인터뷰 전문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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