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 84%가 연명의료 거부하지만 실제 중단은 16% 불과

입력 2025-12-12 00:29 수정 2025-12-12 00:29
게티이미지뱅크

65세 이상 고령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연명의료를 거부 의사를 나타냈지만 실제 사망자 중 이를 유보·중단한 비율은 20%를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환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하면 건강보험(건보) 지출을 13조원 넘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은행이 11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함께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공개된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노인 실태 조사에서 고령자의 84.1%는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같은 해 고령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유보·중단한 사람의 비율은 16.7%에 불과했다. 오히려 사망자 대비 연명의료 환자 비중은 2013년 55%에서 2023년 67%로 커졌다. 당사자의 의사가 의료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연명의료 환자는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고 가족은 막대한 의료비를 지출한다. 한은 연구진이 시각적 통증 척도(VAS)를 이용해 측정한 결과 인공호흡기 착용 등 연명의료 중인 환자가 느끼는 고통 지수는 평균 35점으로 심폐 소생술(8.5점)의 4배를 넘는다. 연명 환자가 임종 전 1년간 지출하는 생애 말기 의료비도 2023년 평균 1088만원이다.

이에 따른 건강보험 누수 또한 심각하다. 지금처럼 고령 사망자 10명 중 7명 가까이가 연명의료를 받을 경우 건보 지출은 2030년 3조원에서 2070년 16조9000억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연명의료 시행률이 희망자 의사에 부합하는 15% 수준으로 낮아지면 같은 기간 예상 건보 지출액의 78.7%(13조3000억원)를 호스피스(특수 임종 병원)나 완화 의료, 간병 지원에 쓸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고령자가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 한은의 지적이다. 이를 위해 의향서를 미리 작성한 사람에게는 건보료를 인하해주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연명의료 시술 전체에 대한 중단 여부만 결정하는 현행 의향서를 ‘연명의료 시술’과 ‘생명 유지를 위한 강제 영양 공급’ 등에 동의하는지 세세히 정할 수 있도록 서식도 개선해야 한다. 의향서를 쓰지 못한 채 의사 표현이 불가능해진 환자를 대리해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의료 결정 대리인제’ 도입 논의도 필요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심포지엄 환영사에서 “생명의 존엄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건보 재정과 같은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면서도 “고령화가 빠른 우리 사회에서 불필요한 연명의료 지속이 초래할 문제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연명의료가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주제라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 8월 돌아가신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 계셨을 당시) 영양제는 더 넣지 말고 통증만 치료해 달라고 하셨다. 지나고 보니 어머니께도, 사회적으로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가 어머니에게 드리는 마음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경험을 말하면서 목이 메는 모습도 보였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