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경기침체에 대출 축소까지… 지식산업센터 ‘최악 한파’

입력 2025-12-12 00:18 수정 2025-12-12 00:18
게티이미지뱅크

“지식산업센터에 직접 입주하려고 분양받아 놓고도 (입주한) 지원시설이 부족해 다른 곳을 임차한 경우도 있어요. 대출 이자에 새로 임차한 사무실 임대료와 관리비까지 이중으로 부담하는 셈이죠. 임대료 없이 관리비만 내라고 해도 당최 문의가 없어요.”

경기도 평택 고덕면 해창리 지식산업센터 입주자를 대표하는 최승자 한국지식산업센터연합회 평택지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가 불과 2㎞ 근방에 있어 협력업체 입주 수요가 많을 거란 기대감에 이곳에만 지식산업센터 8개가 세워졌지만 현재 평균 공실률은 60~70% 수준이다. 면밀한 수요 조사 없이 우후죽순 이뤄진 공급과 경기 침체, 대출 축소 등이 겹친 결과다.

11일 상업용 부동산 종합서비스 기업 부동산플래닛에 따르면 올 3분기(7~9월) 전국 지식산업센터 매매 건수는 520건, 매매 금액은 2089억원으로 집계됐다. 분기별 데이터를 집계한 2021년 이후 건수와 금액 모두 최저 수준이다. 지난 2분기(4~6월)보다 매매 건수(814건)는 36.1%, 금액(3492억원)은 40.2% 감소했다.


지식산업센터는 제조업, 지식산업, 정보통신산업 등의 사업장과 지원시설이 입주할 수 있는 3층 이상의 건물이다. 과거엔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렸다. 판교테크노밸리의 성공 이후 지자체가 첨단산업 육성을 내걸고 지식산업센터를 경쟁적으로 유치했다. 지난달 말 기준 전국 지식산업센터는 1548개로 집계됐는데, 이중 수도권에 1193개(77.1%)가 몰려있다.

그러나 2022년 금리가 크게 오르고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수요 대비 공급이 과도하게 이뤄지며 공실이 늘자 은행은 대출을 걸어 잠갔다. 수익률과 담보가치가 낮아져서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년~2024년 3월) 준공된 지식산업센터의 평균 공실률은 37.2%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준공이 본격화하면서 대출을 감당하지 못해 경매에 넘어가는 사무실이 늘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1~11월 수도권에서 경매로 나온 지식산업센터는 2749건이다. 지난 한 해 전체 경매 건수(1348건)의 배를 넘었다. 매각가율과 매각률은 계속 하락세다. 올해 매각률은 20.1%다. 5건 중 4건은 경매로 내놔도 거래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입주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제 주체에 문제가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지난해와 올해 지식산업센터 준공은 증가한 반면 경기 위축으로 실수요가 끊기면서 공실이 늘고 잔금대출은 막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건설사와 시행사뿐 아니라 중·후순위 대출을 내준 제2금융권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입주업종 확대, 주거 용도 전환, 지산 총량제 시행 등이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최근 서울 구로·금천·영등포구 등 일부 지자체는 조례 등을 통해 입주업종을 확대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근본적으로 자생할 환경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 입주기업에 대한 세액감면, 지자체 창업센터와의 연계 등 공실을 줄일 방향을 찾고, 지식산업센터 물량 조절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