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자립준비청년과 10년 동행… “사회인으로 살아갈 힘 얻어”

입력 2025-12-12 02:05
삼성희망디딤돌 2.0 직무교육에 참여한 자립준비청년들이 2023년 11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삼성웰스토리에서 중식 셰프의 특강을 듣고 있다. 이한형 기자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주거는 물론 취업교육과 심리정서 돌봄 등 ‘희망의 길’을 놓아주는 삼성희망디딤돌 사업이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삼성 임직원들의 아이디어와 자발적 기부로 첫발을 내딛은 이 사업을 통해 그간 전국 5만4000여명의 자립준비청년들이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희망과 힘을 얻었다.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2015년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삼성희망디딤돌 사업은 이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기업, NGO가 협력하는 다층적 통합지원체계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씨앗이 된 건 2013년 12월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20주년을 기념해 삼성이 임직원들에게 지급한 특별격려금이다. 임직원들은 당시 격려금의 10%를 기부하기로 했고 회사는 이를 보다 뜻깊게 사용해보자며 사내 공모를 통해 지원 사업을 모색했다. 이때 선정된 사업이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다가 만 18세가 돼 보호 조치가 종료되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삼성희망디딤돌이다. 희망의 디딤돌 역할을 하자는 이 명칭도 사내 공모를 통해 만들어졌다.


삼성은 임직원들이 낸 기부금 250억원을 바탕으로 2015년 부산에 1호 희망디딤돌센터를 세우기 위한 공사에 착수했다. 2019년에는 회사 지원금 250억원을 추가해 대상 지역을 확대했고, 2022년부터는 삼성 전 관계사 임직원들도 동참했다.

직무교육을 수강 중인 자립준비청년이 2024년 11월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유기견 보호시설에서 강아지 털을 깎아주고 있다. 윤웅 기자

삼성희망디딤돌은 안정적 주거 지원을 제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희망디딤돌 1.0’에서 진로 탐색, 취업 지원에 무게를 둔 ‘희망디딤돌 2.0’으로 발전해 왔다. 보호시설에서 나온 청년들이 1인 1실의 개별 공간에서 길게는 2년간 머물며 자립을 준비하는 울타리 역할을 하는 희망디딤돌센터는 현재 전국 13개 지역에 16곳이 있다. 센터를 이용한 누적 인원은 5만4611명에 달한다. 센터에는 사회복지사와 심리상담사, 직업상담사 등이 상주하며 청년들의 교육과 훈련을 돕는다. 삼성은 광역자치단체별로 자립준비청년 현황과 지역 특성에 맞춘 사업을 설계해 사업계획 심의 후 3년간 센터 건립비와 운영비를 지원하고 지자체에 센터를 기부채납한다. 이후 지자체가 자체 조례를 제정해 이를 근거로 예산을 지원, 센터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렇듯 희망디딤돌센터를 통해 제시된 자립 통합지원 사업 모델은 자립체험 의무화, 전담기관 설치 등 정부 제도로 정착 및 확산되고 있다.

김성경 삼성희망디딤돌 전문위원은 11일 “희망디딤돌은 시설아동이 보호 단계, 보호종료 단계, 청년으로 자립하는 과정을 모두 지원하는 획기적인 사업”이라며 “그동안 우리나라 아동복지법에서는 보호청소년의 자립을 만 18세 연령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일회성 완성으로 여겨왔는데, 희망디딤돌은 수많은 청년들의 자립을 과정으로서 접근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임종원 강원센터장도 “자립은 사회 안에서 스스로 주체가 돼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을 지향한다”며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 자립할 수 없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자립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

2023년 7월 서울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자립준비청년과 함께하는 디딤돌가족 멘토 교육에서 참석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권현구 기자

삼성이 놓은 첫 번째 디딤돌이 주거 지원이라면 두 번째 디딤돌은 취업 교육이다. 센터에서 지내는 청년들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장기적인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안정적 주거 못지않게 취업할 수 있는 역량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은 자체 교육 역량과 인프라, 협력사 네트워크를 연계해 실전형 직무교육 과정을 추가했다. 현재 전자·IT제조, 반도체 정밀배관, 중공업 선박제조, 온라인광고홍보 등 10개 직무교육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2023년 희망디딤돌 2.0이 시작된 이후 취업 지원에 참여한 삼성 관계사는 13곳, 교육과정에 참여한 청년은 241명에 이른다. 지난달 기준 취업률은 47.3%로 집계됐다. 올해부터는 아직 시설 보호를 받고 있는 예비자립준비청년들도 조기에 진로를 탐색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진로코칭 캠프도 도입했다.

2021년 6월 광주 서구에서 열린 삼성희망디딤돌 광주센터 개소식에서 참석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자립준비청년을 멘토링하는 ‘디딤돌가족’ 캠페인은 청년들의 사회적 울타리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삼성은 2022년 캠페인을 시작해 2025년 멘토 참여 대상을 관계사 전체로 확대했고, 국민일보의 네트워크를 통해 선발한 일반인 멘토로까지 참여 범위를 넓혔다. 이들은 자립준비청년들과 사회적 가족으로 결연해 인간관계나 진로 등 고민을 나눴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연간 10회 진행되는데 지난해에는 이행 횟수가 평균 9.2회에 이를 만큼 호응이 좋았다고 한다. 국민일보는 2023년부터 삼성과 ‘자립준비청년에 희망디딤돌을’ 캠페인을 공동 진행하고 있다.


문성윤 전남센터장은 “주거, 취업, 심리정서 지원은 각각 독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트라이앵글로 작동한다”며 “자립준비청년에게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 자체가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평가했다. 삼성은 지난 8일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제5회 대한민국 착한기부대상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994년 국내 최초로 사회공헌 전담 조직을 구성한 삼성전자는 27년 동안 9200억원을 기부하고 임직원 봉사활동을 통해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 후원을 선도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지난 10년 동안 자립준비청년 문제는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고 정책적 변화도 이어졌다. 이는 민간이 주도적으로 공공 정책을 이끈 사례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삼성희망디딤돌의 지원을 받은 청년들이 일상생활과 자기관리, 진로·취업, 사회적 기술 등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체감했다는 것이 큰 성과로 꼽힌다. 현장 전문가들은 지난 1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 큰 디딤돌을 놓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 센터장은 “성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경계선장애, 은둔 문제가 있는 자립준비청년은 자립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며 “초기 예방적 개입을 확대하기 위해 지역사회 전문가와의 긴밀한 연계·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보호체계가 미처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촘촘한 안전망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24년 5월 대전 중구 대전평생교육진흥원에서 열린 대전센터 개소식에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그는 또 “희망디딤돌은 현장과 조율하며 청년들의 욕구를 잘 반영했기 때문에 지원 프로그램의 범위와 깊이를 빠르게 넓혀올 수 있었다”며 “이는 삼성희망디딤돌의 큰 힘이자 앞으로 더 큰 디딤돌을 만들어가는 데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