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했다가 이거 또 5년이 괴로워지잖아요.”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은 20대 대선을 9일 앞둔 2022년 2월 28일 통일교 최고위급 간부 이모(60)씨와의 통화에서 “결국 5년 뒤 다시 우리가 영향을 주려면 플랫폼이나 비즈니스, 프로젝트가 다 바뀌어야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통일교가 대선 이후 입지 구축을 위해 로비를 시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다. 윤 전 본부장과 이씨 간 녹취록에는 통일교가 여야를 막론하고 일종의 ‘보험’을 들으려 했던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11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윤 전 본부장은 대선 직전인 2022년 2월 28일 이씨와의 통화에서 “사실은 이재명 쪽에서도 다이렉트로 어머님(한학자 총재)을 보려고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님 의도야 ‘클리어’(명확)한데 그걸 다시 우리가 ‘브릿지’(연결)하고 이럴 순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총재를 정점으로 한 통일교 수뇌부가 당시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 방침을 굳힌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통일교는 이재명 후보 캠프 쪽에는 내부 기류를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본부장은 “이재명 쪽도 김현종을 통해서 또 ‘어프로치’(접촉)해 왔는데 다행히 만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쪽(윤석열·이재명 후보) 다 ‘우리가 어디 한쪽을 이렇게 밀었다’ 이런 거는 느껴지지 않게 돼 있다”며 “이제는 뭐냐면 몇 명이든, 몇 명이 아니든 간에 신세를 지게끔 해야 된다”고 설명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은 당시 이재명 캠프의 국제통상특보단장을 맡고 있었다.
통일교가 막판까지 어느 후보에게 힘을 실을지 고심한 흔적도 드러났다. 윤 전 본부장은 녹취록에서 한 총재에게 “L(이재명 후보)이든 Y(윤석열 후보)든 이제 양쪽 다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총재에게 “어머님이 결정하시면 저희들은 움직인다. 대신 양쪽을 해보니 다 어렵고, 통일교 리스크가 있었다”고 보고했다고 언급했다. 이후 한 총재는 윤 전 본부장에게 “Y로 하면 좋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교 내부적으로 고무된 분위기도 감지됐다. 윤 전 본부장은 “우리가 그래도 ‘캐스팅 보트’할 수 있는 입장이 됐다는 건 고무적이고 우리 안의 조직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통일교가 2022년 2월 13일 한반도 평화 서밋 행사에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을 초청한 것과 관련 있다. 윤 후보는 이 행사에서 펜스 전 부통령을 만났고, 이 후보 캠프에 있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김 차장도 참석했다. 대선 국면에서 여야 양측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입지에 올라섰다고 자평한 셈이다.
녹취록에는 이재명 캠프 핵심 인사였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A의원의 이름도 거론됐다. 이씨가 대화 말미에 “그러면 A쪽은 한번 나중에 보자고 하겠다”고 하자 윤 전 본부장은 “여기도 고민하고 있다는 정도만 유보해줘도 될 것 같다”고 답했다.
구자창 이서현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