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건희 측 받은 이우환 그림, 국과수서 “감정 불가”

입력 2025-12-11 18:54

김건희 여사에게 공천을 청탁한 혐의를 받는 김상민 전 검사의 재판에서 이우환 화백 그림 ‘점으로부터 No.800298’(사진)의 진위 규명이 벽에 부딪혔다. 민간 감정기관 두 곳의 결론은 진품과 가품으로 엇갈렸는데, 재판부가 감정을 의뢰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마저 ‘감정 불가’라고 회신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재판부는 기존 감정 결과들을 바탕으로 진품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1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과수는 법원의 이 화백 그림 진위 감정 요청에 대해 지난 9일 ‘감정 대상과 진품 둘 다 실물을 제출하지 않아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냈다. 회신서에는 실물을 확보하더라도 검증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현복)는 지난달 김 전 검사 측 요청을 받아들여 김건희 특검이 압수한 이 화백 그림의 감정을 국과수에 의뢰했다. 김 전 검사 측은 감정촉탁서를 통해 진품 제작 연대인 1980년대에 보편적으로 사용됐으나 이후 생산이 중단된 ‘납’ 성분의 존재 여부 등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날 열린 공판에서 추가 검증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 재판장은 “이우환 진품을 가지고 있는 박물관, 미술관, 개인을 수소문해서 협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사실상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특검에서 신청·제출한 증거에 기초해 진품성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특검이 감정을 의뢰했던 민간 기관 2곳의 판단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지난 8월 ‘점을 구성하는 안료의 재질과 농도, 그림의 형태나 전개 방식이 이 화백이 비슷한 시기 그린 작품들과 일치한다’며 진품 결론을 냈다. 반면 한국화랑협회는 지난 9월 위품 결론을 냈다. 협회는 작품 서명에 사용된 안료의 채도가 이 화백의 다른 작품들과 다르고, 그림 표면에 위작 제작에 흔히 사용되는 유리 조각 추정 물질이 관찰된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특검과 김 전 검사 측이 진위 공방을 벌이는 것은 그림의 가액이 처벌 수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전 검사 측은 진품인 줄 알고 속아서 샀기 때문에 평가액이 청탁방지법 위반 기준액인 ‘1회 100만원, 매 회계연도 300만원 이하’보다 적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그림의 실제 가격과는 별개로 구입 가액(1억4000만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재경법원 부장판사는 “준 사람, 받은 사람 모두 약 1억원을 그림의 가치로 인식했다면 이를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