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정치 채널 속 혐오 언어, 정서적 오염 확산시켜

입력 2025-12-12 03:03
위 이미지는 한 기독정치 유튜브 채널 영상과 댓글을 기반으로 제작한 일러스트. 제미나이

“교회를 다녀도 ○○○을 지지한다면 당신은 가짜” “대한민국 부정선거 중공군 개입 정황” “기독교에 침투한 공산주의 수뇌부의 정체”.

11일 자신을 전도사라고 소개하는 한 기독정치 유튜버의 채널 첫 화면을 장식한 문구들이다. 영상에선 사회 갈등과 국가 위기, 영적 공격 같은 표현이 반복됐다. 댓글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특정 집단을 향한 비하가 두드러진다. ‘다음은 우리가 당한다’는 식의 공포 언어가 뒤섞여 있었다.

정치와 신앙이 결합하면서 분노가 공포의 정서로 번지는 패턴은 다른 기독정치 채널에서도 파악됐다. 국민일보는 ‘기독정치’ ‘신앙’ ‘정치’ 채널을 유형별로 분류해 1년치 인기 영상 댓글 7만여 개를 분석했다. 대상 채널은 ‘신앙과 유튜브 알고리즘’ 기획 2회에서 분석한 그룹과 동일하다(국민일보 2025년 12월 11일자 35면 참조).

댓글 내 상위 단어 20개를 재분류한 결과 신앙 채널의 상위 단어는 ‘예배’ ‘새벽’ ‘선교사’ ‘믿음’ 등 전통적인 신앙 언어였다. ‘폭탄’ ‘계엄령’ 같은 정치 채널 내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독정치 채널 5곳의 1년치 인기 영상 댓글 7만여개를 분석해 제작한 워드 클라우드. ‘하나님’보다 ‘윤석열’ ‘대통령’ 등의 키워드가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제미나이

기독정치 채널의 최상위 단어는 ‘윤석열’(8033회) ‘대통령’(7808회)이었다. ‘하나님’(4745회)은 3위로 밀렸다. 신앙 채널에선 볼 수 없었던 ‘충격’(3413회) ‘협박’(2920회) ‘잔인’(2675회) ‘탄핵’(2500회) 같은 단어도 순위권 안에 들었다.

기독정치 채널에선 ‘중국인’ ‘성수동’ 같은 단어도 10위권에 등장했다. 성수동과 중국인 키워드는 지난 10월 중국인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문구를 내걸어 논란이 된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와 관련한 영상에서 나왔다. 당시 해당 카페 사장이 SNS 소개글에 영어로 “미안하지만 우리는 중국인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공지했고 이후 한 중국인 인플루언서가 이 카페에 갔다가 입장이 거부됐다고 주장하는 글을 SNS에 올리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기독정치 채널이 이 이슈를 소비하는 방식도 혐오와 공포의 정서와 맞닿아 있었다. 댓글에서는 “반중, 혐중은 의무이자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같은 발언은 물론 “한국은 중국에 주권을 침탈당했다” 등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음모론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부정적 정서가 긍정적 표현보다 훨씬 빠르게 퍼진다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HAI)는 ‘소셜미디어 뉴스의 편향과 감정 톤이 확산에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로 2011~2020년 사이 SNS에 올라온 뉴스 게시물 3000만건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분노 불안 경악처럼 사람을 강하게 자극하는 부정적 감정이 담긴 문장이 중립적이거나 긍정적 문장보다 훨씬 더 빠르고 넓게 퍼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여기서 말하는 부정적 감정은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감정, 즉 놀람 격분 두려움처럼 몸을 긴장시키는 감정을 뜻한다. 이런 확산 구조가 온라인 공간에서 경쟁적으로 반복되며 더 강한 감정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분석이다. 연구진은 이런 흐름을 정서적 오염(affective pollution) 즉 부정적 감정이 온라인 공간 전체를 오염시키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장동민 백석대 역사신학 교수는 부정적 언어가 신앙의 이름으로 온라인에서 반복적으로 확산하는 현상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광장은 물리적으로 그 장소만 피해도 오염된 언어를 듣지 않을 수 있지만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온라인 환경은 개인을 혐오의 언어로 가득한 공간으로 데려가 가둔다”며 “한국 개신교 일부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언어 사용이 반복되면 종교적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온라인 언어 지형이 개개인의 정신 건강에 주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마치 깨진 유리창에 사람들이 돌을 던지듯이 공격적 댓글이 많은 공간에서는 평소 점잖은 표현을 쓰던 사람도 쉽게 공격적인 댓글을 달게 된다”며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타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되는데 이는 정신 건강에도 해롭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언어와 신앙 언어가 괴리되는 문제도 제기된다. 이수인 아신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성경은 한 입에서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며 “내가 머무는 온라인 공간이 혐오와 저주가 반복되는 곳이라면 그 자체로 위험 신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댓글을 쓰는 공간이 신앙적으로 건강한지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손동준 이현성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