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전공하고 유학해 미국 빅테크에서 커리어를 쌓은 아버지에게 아들이 진로 상담을 청했다. 자신과 같은 길을 가보겠다는 아들에게 “그러지 말고 배관공 같은 직업을 택해서 행복을 찾는 건 어떠냐” 했다가 옆에 있던 아내의 불호령을 들었다고 한다.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아내의 반대, “몸 쓰는 일은 싫다”는 아이의 거부감에 나름 숙고한 아버지의 조언이 없던 일로 됐다는 일화는 최근 어느 SNS에 올라왔다. 인공지능(AI)이 바꿔가는 미래의 직업 지형과 아직 그것을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직업관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을 돌려세울 방법은 없으니, 블루칼라 직종에서 길을 찾는 걸음 또한 분주해졌다.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 직업계 고교 진학 경쟁률과 충원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광주 인천 대구 등 지역마다 몇 해 전까지 정원도 못 채우던 학교에서 많게는 2대 1에 육박하는 경쟁률이 나타나고, 서울도 정원을 초과하는 곳이 부쩍 늘었다. ‘직업계고 경쟁률 3년 연속 상승’ 같은 기사 제목이 말해주듯 최근 3년 새 형성된 트렌드인데, 챗GPT 쇼크 이후 3년이 흐른 시점과 묘하게 맞물려 있다. AI가 개발자, 회계사 등 화이트칼라 직종부터 대체하는 현실에서 블루칼라의 부활을 알리는 조짐일 수 있겠다.
골드만삭스 등 여러 분석 기관이 인공지능 시대의 직업 변화를 예측하며 “의사의 역할은 50% 이상을, 배관공 같은 비정형 노동은 5% 미만을 AI가 대체할 것”이라 했지만, 한국의 의사 직군은 여전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입시에서 자연계열 상위 1% 고교생의 77%가 의대를 택했고, 서울·연세·고려대에서 해마다 많은 학생이 의대 진학을 위해 자퇴한다. 영상 판독과 진단·수술 등에서 사람을 능가하는 AI의 역량이 속속 입증돼도 의대 진학 행렬은 흔들림이 없다.
의대 쏠림과 직업계고 부활. 사뭇 다른 두 현상은 모두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의 선택이 만들어낸 것이다. 10년, 20년 뒤 어떤 결과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