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국회 청문회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한국법인 대표를 전격 교체했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경찰 압수수색까지 이뤄지는 상황에서 박대준 대표가 사임하고, 그 자리에 미국 본사 쿠팡Inc의 최고관리책임자 해롤드 로저스가 임시 대표로 선임됐다. 표면적으로는 모회사 차원의 책임 강화로 보일 수 있으나, 이 시점에 미국 본사의 법률 전문가를 한국 대표로 내세운 결정은 또 다른 의문을 낳는다.
이번 청문회의 핵심 증인은 다름 아닌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다. 그는 쿠팡의 창업자이자 의결권 70%를 가진 실질적 경영자다. 한국에서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의 구조적 책임을 따지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가 국민 앞에서 직접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김 의장은 과거에도 해외 체류 등을 이유로 국회 출석을 거듭 피한 전례가 있고, 이번에도 불출석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인사가 김 의장의 책임을 대신 관리하려는 조치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새 대표 로저스는 김 의장의 핵심 측근이자 법률 전문가다. 이는 책임을 지는 자리라기보다, 책임을 둘러싼 방어막을 세우는 결정으로 읽힌다.
청문회는 단순한 해명이 아니라 기업의 지배 구조와 책임 체계를 확인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실질적 권한을 가진 이는 뒤에 숨어있고, 새로 부임한 대표가 대신 국회에 서는 방식은 국민 앞에서 책임지는 태도라 보기 어렵다. 여론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대표를 교체한 이유가 결국 김 의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더욱 부적절하다.
기업은 국경을 넘어 확장할 수 있지만 책임만큼은 국경 밖에 둘 수 없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매출을 올리고 한국 소비자의 정보를 다루는 기업이라면, 그 결정권자 역시 한국 사회의 책임 요구를 감당해야 한다. 최종 책임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쿠팡이 어떤 대책을 내놓더라도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김 의장은 청문회에 직접 나와 사태의 경위와 책임을 밝히고,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 그것이 쿠팡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최소한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