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중국차 공습’ 일본식 경차로 맞선다

입력 2025-12-12 00:29 수정 2025-12-12 00:29

팔아도 얼마 남지 않는 마진 때문에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추세였던 경차를 완성차업체들이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전 세계적인 고물가 우려와 중국의 저가 자동차 공습에 맞서기 위해서다. 이 같은 논의가 가장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건 ‘경차 불모지’ 미국이다.

11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스텔란티스그룹은 최근 미국 시장에 소형 전기차 ‘피아트 토폴리노’ 출시 계획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업계 경영진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 경차에 대해 “정말 작고 귀엽다”고 추켜세운 지 일주일도 안 돼서 나온 발표다. 트럼프는 션 더피 교통부 장관에게 일본 규격 경차가 미국에서 주행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가 경차 확대를 지시한 표면적 이유는 디자인이지만 업계에선 인플레이션 우려를 저렴한 차로 잠재우겠다는 속내가 자리한다고 해석한다. 현재 미국 주요 신차의 평균 가격은 4만8000달러(약 7050만원) 수준이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서민층의 신차 구매 진입 장벽은 역대 최고 수준”이라며 “보급형 저가 차량 공급으로 물가 상승 불만을 잠재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일본식 경차는 현대자동차 캐스퍼나 기아 레이·모닝보다 전장은 약 20㎝, 배기량은 330㏄ 정도 작다. 미국 가격은 1만~1만5000달러로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일본 경차를 수입하지 않고 제조사가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 닛산 등 일본 업체는 셈법 계산에 나섰다. 닛산은 미국에서 다른 업체와 경차를 공동 개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경차 판매량의 반등을 예상하는 시각은 많지 않다. 현재 미국에서 경차 생산은 불법이 아니지만 안전 기준이나 속도 요건 등을 충족하기가 어렵다. 대형차가 즐비한 미국 도로에서 사고 발생 시 안전 우려도 크다. 뉴욕타임스(NYT)는 “일본 규격 경차는 일반 미국 승용차 무게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에어백이나 측면 충돌 보호를 위한 공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경차는 대당 마진이 낮아서 완성차업체가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블룸버그는 “일본 기업이 미국에서 경차를 생산·판매하지 않는 건 사업 타당성 때문”이라며 “트럼프의 제안은 근본적인 위기를 해결하는 대신 국민에게 ‘더 열악한 상품으로 버티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유럽에서도 경차 개발에 힘을 쏟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포드는 르노의 전기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소형 전기차 2종을 개발키로 했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엔 저렴한 중국산 전기차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자리한다.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그룹 CEO는 “중국 업체들의 진입 속도를 고려할 때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