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사이 중국계 업체(C커머스)들이 한국 내 조직 확대와 현지화 전략에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역직구 플랫폼 정도로 여겨졌던 중국 업체들은 최근 변호사 채용·결제 인프라 강화 등을 통해 법무·물류·결제 전반의 핵심 기능을 직접 갖추며 사실상 ‘한국형 조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알리바바그룹은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알리) 법무 담당 변호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소비자 고객서비스(CS), 환불, 통관 등 한국 규제 환경에 직접 대응할 법무 라인을 내부에 두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뷰티 및 맘앤키즈 상품기획, 콘텐츠 제작, 고객 경험 및 서비스 매니지먼트, 마케팅 등 다양한 직무의 담당자를 모집 중이다.
경쟁사인 테무도 사업 개발 매니저와 물류 담당자를 채용하며 한국 시장 확장에 나섰다. 최근엔 국내 물류센터 확보에 나섰다. 해외 배송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 국내 판매자 유치와 풀필먼트 고도화까지 염두에 둔 장기 전략으로 분석된다.
결제 영역에서도 중국계 플랫폼의 존재감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알리바바 계열 글로벌 결제 플랫폼 ‘알리페이플러스’는 지난 9일 서울 서초구에서 미디어 라운드테이블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웨이샤오 장 북아시아·북미 총괄은 “한국은 K콘텐츠 영향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하는 다이내믹한 시장”이라며 “인지도는 낮지만 가맹점 환경을 강화해 내년 QR코드 거래 건수를 20% 이상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알리페이플러스는 해외에서도 자국 모바일 월렛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연동 서비스를 제공하며 한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카카오페이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능을 통해 국내 마스터카드 가맹점에서 비접촉 결제가 가능하다. 제로페이와 협력해 백화점·면세점·편의점 등 약 200만 곳에서 결제를 지원한다. 올해 1~11월 국내 결제 건수는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약 81%가 자국 결제 앱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중국계 플랫폼이 결제 등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갖추면서 한국 시장에서 생성되는 소비 데이터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보안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계 기업이 한국에서 법무·결제 기능을 직접 구축하는 흐름이 ‘규제 대응 강화’인 동시에 잠재적 ‘데이터 이동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인해 알리나 테무 등 C커머스뿐만 아니라 네이버쇼핑·SSG닷컴 등 국내 이커머스 기업이 단기적으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다만 업계는 속단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의 견고한 아성이 흔들린 것은 (경쟁사에겐) 분명한 기회지만, 단순 유입 증가만으로 판단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