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그제 8개 금융지주 회장들을 소집해 금융권 ‘지배구조 선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중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CEO 자격 기준, 사외이사 추천 구조의 다변화 등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 주주 자격으로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방식’과 ‘IT·보안·금융소비자 분야의 대표성을 가진 사외이사를 최소 1명 포함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예시했다. 여기서 국민 대표 기관은 사실상 국민연금이고, 금융소비자 대표는 시민단체 인사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의 상장사 사외이사 추천은 이 원장이 참여연대 시절부터 주장해오던 사안이기도 하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금감원이 이러한 논의를 왜 주도하느냐는 점이다. 지배구조 방향을 바꿔야 한다면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 개정 등을 논해야 할 사안이지, 감독기관이 TF를 꾸려 설계자로 나서야 하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금감원은 고위험 상품 불완전판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사모펀드 사태 등에서 사전 감독 실패를 반복하며 신뢰를 잃어왔다. 금융권 지배구조 개편보다 감독 기능 복원이 시급한 것 아닌가.
이번 구상은 정치적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국민연금과 시민단체가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는 경영 독립성을 흔들어 정치·여론의 압력을 받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다. 이재명 대통령의 자영업자 부채 탕감 발언 등 포퓰리즘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금감원의 행보가 그 연장선에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감독기관이 지배구조에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원칙 제시와 감독에 한정돼야 한다. TF까지 띄워 지배구조 설계도를 직접 그리려는 접근 방식은 감독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려면 감독기관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