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전공을 공부하는가.” 학문의 길을 택한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에게 던져봤을 질문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여기에 질문이 하나 더 추가된다. “지금 하는 공부가 내 소명과 부합할까.” 이러한 신앙적 고민 속에서 진로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 2권을 소개한다.
신간 인문학의 길에서 성서를 만나다(잉클링즈)는 이 두 가지 질문에 인문학자 15인이 답한 책이다. 국내외 교육기관에서 철학과 역사학, 문학과 언어학, 예술 분야를 연구하는 저자들은 신앙을 갖게 된 계기와 전공을 선택한 이유, 기독교적 세계관에 비춰 학문을 탐구한 경험 등을 소개한다.
저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인문학과 성서를 사랑하는 모임’(인성모) 소속이라는 것이다. 2007년 출범한 인성모는 소속 학자의 학문과 신앙을 다룬 책을 2010년 펴낼 계획이었다. 이 목표가 15년 만에 달성된 주된 이유는 “교회 언어를 학문 언어와 혼합하는 것에 관한 염려” 때문이었다. 인성모를 조직한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성이 신앙에 압도돼 세상과 소통을 할 수 없는 결과물이 나온 사례를 심심치 않게 목도한 터라 이를 횡단하는 글쓰기는 낯설고 위험하게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저자들의 글을 “커밍아웃과 다름없다”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책에 기독교 신앙이 삶과 사유, 전공 연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진솔하게 담아냈다. 학문적 성취나 보람뿐 아니라 실패와 좌절, 열패감 등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 특징이다. 기술철학자 손화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는 연구 중 느낀 막연함에 관해 “과거엔 이론이 어떻게 현실에 닿는지 몰라서 괴로웠다면, 이제는 이론으로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멀어 보이는 현실이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한 노승욱 한림대 도헌학술원 교수는 대학원생 시절 신앙과 학문 간 일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영성과 지성의 지극히 조화로운 일치는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 나오는 꽃처럼 언제나 저만치 놓여있는 목표였다.”
저자들이 이런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던 건 학문에 잇대져 있는 소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윤리학을 전공한 목광수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는 “내 글과 연구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지라도 누군가에게 ‘사회의 부정의와 비윤리에 침묵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기 위해 연구한다. 또 훗날 그분께 ‘제가 그때 파수꾼처럼 외쳤어요’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광태 한림대 러시아학과 교수는 “중앙 유라시아 역사를 연구하며 주인공이 주변인으로 폄하되는 현실을 지적해왔다”며 “주변인으로 전락한 누군가를 다시 주인공이 되도록 옆에서 거드는 일은 신앙인의 삶이자 사명과도 맞닿아있다”고 전한다. 대학 전공과 진로, 삶의 현장에서 신앙의 적용을 고민하는 이라면 읽어봄 직하다. 철학자 강영안 한동대 석좌교수가 서문을 썼다.
신앙에게 신앙을 묻다(비아토르)는 한반도평화연구원장과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통일과 사회적 트라우마 연구에 진력해온 전우택 연세대 의대 교수의 에세이집이다. 책에는 저자가 대학과 연구소, 의료선교단체 한국누가회 등에서 차세대 기독 학자와 대학원생에게 전한 당부가 적잖게 담겼다.
그는 기독 학자를 “하나님께 먼저 질문을 던져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으로 곤고한 사람을 돕는 자”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학문을 이 세상의 곤고함과 연계하지 않은 채 자신의 지식을 그저 돈벌이, 생계유지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학자가 아닌 지식기술자”라고 일갈한다. 또 “기독 학자는 신앙적 가치와 논리로 학문과 세상을 보기에 무리 가운데 인정받지 못하거나 거부와 충돌, 비하와 외면을 경험할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당당히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건 나를 의롭다 하신 분이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학문, 특히 의료와 통일 연구 분야에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길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