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겨울꽃

입력 2025-12-12 00:10

십일월 마니산 마른 잎 밟고 오른
산행길에 진달래꽃
떨어질 낙엽도 없는데 바람은 상수리 빈 가지
아프게 흔드는데
그늘에 숨은 나무 바위 아래 키 낮춰
해맑은 꽃송이 내걸고 있는 정신 나간 봄꽃

철 모르고 핀 건가 여태 기다린 건가
표정은 봄꽃 그대로 속살 내밀어 보이지만
속으로 차게 울고 있나
저 아래 텅 빈 검은 갯벌 바다
새들도 돌아가고 때 저문 지 오래인데

바다 건널 뱃길도 끊겼고
북으로 달려갈 꿈도 접어야 하는데
오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느라
계절을 살아보지도 못했는지

매양 꽃 피워 그대 맞이할 생각뿐이었는지
다 떠나고 저문 뒤에도
피어날 꿈 그것 하나만 남아
이렇게라도 허공에 피워두어야 하리
세월의 허기를 허공에 묻어두고

그러지 않나 누구나 그러지 않나
그 쓸쓸한 길을
누구나 겨울꽃 하나 품고 가지 않나

-백무산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