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일주일 앞두고…’ 미국인으로 대표 바꾼 쿠팡

입력 2025-12-11 00:11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가 3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쿠팡 개인정보 유출 관련 현안질의에 출석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박대준 쿠팡 대표가 국회 청문회 출석을 앞두고 전격 사임했다. 신임 대표는 모회사인 쿠팡Inc의 실세이자 조직 내 2인자로 꼽히는 해롤드 로저스 쿠팡Inc 최고관리책임자(CAO)다.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청문회 출석이 미지수인 가운데, 로저스 대표가 청문회를 포함해 각종 사안에 어떤 식으로 정면돌파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쿠팡은 박 대표의 사임 소식을 전하며 로저스 CAO 겸 법무총괄을 한국법인의 임시 대표로 선임했다고 10일 밝혔다. 로저스 대표는 사내 메시지를 통해 “지금 우리의 우선순위는 명확하다. 이번 사태를 철저히 대응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정보보안을 강화하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며 “조직을 안정시키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모든 팀을 지원하는 데에도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저스 대표는 김 의장의 심복으로 불린다. 쿠팡 내부에서는 “로저스 입에서 나온 말이 곧 김범석의 뜻”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글로벌 기업과 대형 로펌을 거쳐 2020년 1월부터 쿠팡에 합류했다. 로저스 대표는 그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했고, 김 의장과 여러 현안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한 인물로 알려졌다. 쿠팡이 미국 본사 소속 임원을 한국 법인 대표로 임명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17일 열릴 쿠팡 청문회의 증인 명단에 로저스 대표를 넣었다. 앞서 과방위는 김 의장 등 쿠팡 임원 5명을 증인으로 채택한 바 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출석 요구도 유지돼 증인은 모두 6명으로 늘었다. 로저스 대표는 청문회에 나서 상황을 수습하겠다는 입장이다. 로저스 대표가 출석 의지를 드러내면서 김 의장의 출석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졌다. 일각에서는 미국 변호사인 로저스 대표가 청문회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진정성 있게 임하겠느냐는 비판적인 우려도 제기된다.


박 대표의 사임이 사실상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도 있다. 사태 발생 이후 수습 과정에서 지배 구조 관련 비판이 제기되고, 전관 채용과 사과문 논란 등으로 상황이 악화한 측면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쿠팡을 향한 정부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 전자거래감시팀 직원 7명을 투입해 쿠팡의 멤버십 탈퇴 방해 의혹과 불공정 약관 논란 관련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통상 공정위가 동원하는 인원보다 큰 규모여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핵심 혐의는 회원 탈퇴를 어렵게 만드는 ‘다크패턴’ 의혹과 개인정보 유출 시 사업자의 책임을 면제하는 약관 조항이다. 공정위는 쿠팡 멤버십 탈퇴 과정이 최대 6단계를 거치도록 설계된 것이 소비자의 청약 철회를 방해했는지를 먼저 들여다볼 계획이다. 또 ‘제3자의 불법 접속 등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회사가 책임지지 않는다’고 규정한 이용약관(제38조 7항)이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지도 검토할 방침이다.

경찰은 전날에 이어 이틀째 쿠팡 한국 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향후 공정위 제재 수준에 따라 시정명령이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법 등 형사 책임 여부도 판가름 날 전망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디지털 사회에서 국민 정보 보호는 플랫폼 기업의 가장 기본적 책무다. 법 위반 사항에 대해 엄정하게 조치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박성영 이누리 신주은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