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나약·쇠퇴” 트럼프 비난에 ‘대서양 동맹’ 균열 커져

입력 2025-12-10 18:53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부터)이 8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에서 회동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에서 유럽을 겨냥해 “나약하고 쇠퇴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새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유럽이 ‘문명 소멸’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해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도 독설을 쏟아낸 것이다. 노골적 비판에 유럽연합(EU) 지도부는 공개 반발하고 나섰다. ‘대서양 동맹’의 균열 확대가 러시아에 이득이 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9일(현지시간) 공개된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유럽의 개방적 이민 정책을 ‘재앙’이라고 표현하며 “그들은 쇠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지도자들이 너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보이려 한다”며 “그것이 그들을 나약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어 “유럽에는 정말 멍청한 지도자들도 있다” “자기들을 파괴하고 있다”고 헐뜯었다.

트럼프는 영국 노동당 소속 런던시장 사디크 칸을 겨냥해 “끔찍하고 사악하고 역겨운 시장”이라며 “(런던에) 많은 이민자가 들어와 그가 선출됐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프랑스 파리는 (이민자 때문에) 완전히 달라졌고, 그런 일들이 보기 싫다”며 “스웨덴도 범죄 없는 나라에서 범죄가 만연한 나라로 전락했다”고 깎아내렸다. 이런 비난을 두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평화를 지탱한 대서양주의(미국과 유럽의 협력을 중시하는 입장)의 가장 심각한 위기”라고 진단했다.

유럽 지도부도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유럽과 미국이 동맹으로서 행동해야 한다”며 트럼프가 유럽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트럼프의 공세에 “일부는 이해할 수 있고, 일부는 유럽적 관점에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과 독일은 안보 정책에서 미국으로부터 좀 더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국방부 차관급 인사인 앨리스 루포는 의회에서 “(새 NSS는) 미국의 이념적 입장을 극도로 잔혹하게 명확화한 것”이라며 “우리는 포식자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NSS 공개 이후 프랑스 고위 당국자의 가장 강경한 논평”이라고 전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재차 압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계엄령 체제에서 선거 없이 임기를 연장하고 있는 상황도 비판했다.

젤렌스키는 이틀간의 유럽 순방에서 영국·프랑스·독일 정상을 만나는 등 지지 결집에 나섰다. 교황 레오 14세는 젤렌스키를 관저에서 접견한 후 “최근 (트럼프의) 유럽 관련 발언은 현재와 미래의 동맹을 파기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CNN은 미국과 유럽의 갈등 국면에 대해 “러시아에는 하늘이 준 뜻밖의 선물”이라고 전했다. 러시아는 앞서 미국의 새 NSS에 대해 “우리의 비전과 부합한다”며 긍정 평가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