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도 사랑도 불꽃처럼…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입력 2025-12-11 01:12 수정 2025-12-11 01:12
작품 700여편에 출연하며 1960~80년대 한국 영화계를 이끈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씨가 지난 7일(한국시간) 오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별세했다. 왼쪽 위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황혼열차’(1957) ‘인생은 나그네길’(1972) ‘내 주먹을 사라’(1966) 극 중 모습.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 당시 팬들에게 손 흔들며 인사하는 고인의 모습.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연합뉴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1960~80년대 한국 영화계를 풍미한 원로 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씨가 은퇴 후 머물던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지난 7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10일 “김지미 배우가 지난 7일 오전 4시30분 미국 LA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고인의 사인은 저혈압으로 인한 쇼크로 추정되며, 최근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회는 미국 현지에서 화장이 이미 마무리 된 점 등을 고려해 별도의 영화인장은 치르지 않고, 국내에 추모 공간을 마련해 고인을 기릴 계획이다.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 덕성여고 재학 시절 김기영 감독에게 ‘길거리 캐스팅’돼 데뷔작 ‘황혼열차’(1957)로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1992년작 ‘명자 아끼꼬 쏘냐’(감독 이장호)까지 무려 700여편에 출연하며 영화사에 유례없는 필모그래피를 남겼다. 2010년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고인은 데뷔 이듬해 멜로영화 ‘별아 내 가슴에’(1958·홍성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1959·박종호) ‘장희빈’(1961·정창화) 등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기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화려한 미모와 세련된 도시적 이미지로 사랑받았으며, 특히 살인 사건에 얽힌 묘령의 여인을 연기한 ‘불나비’(1965·조해원)는 그의 ‘팜므파탈’ 매력이 돋보인 대표작으로 꼽힌다.

김수용·임권택·김기영 등 거장들과의 작업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토지’(1974·김수용)에서 대지주 가문을 이끌어가는 안주인 역을 맡아 파나마국제영화제와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만추’로 리메이크된 작품인 ‘육체의 약속’(1975·김기영)과 이산가족이 된 아들을 찾아 나선 중년 여성을 연기한 ‘길소뜸’(1985·임권택)으로도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배우를 넘어 제작자이나 영화 행정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85년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해 ‘티켓’(1986·임권택) 등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을 지내며 한국 영화 산업의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데도 힘을 보탰다. 작품 활동을 함께한 홍성기 감독, 당대 인기 배우 최무룡, 사실혼 관계였던 가수 나훈아 등과 4번의 결혼과 5번의 이혼을 거쳤다.

고인은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 참석 당시 “배우로서, 개인으로서 인생의 종착역에 가까워지는 시간”이라며 “그동안 사랑을 주신 여러분 가슴 속에 영원히 저를 간직해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