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영어 쇼크’ 후폭풍… 평가원장 사임에 수능폐지 목소리

입력 2025-12-11 02:03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4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와 관련 총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수학능력시험 난이도 조절 실패 후폭풍이 거세다. 영어가 예상보다 훨씬 어렵게 나와 대입 혼란이 커지자 출제를 담당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원장이 사임했다. 반복되는 ‘난이도 참사’에 30년 넘은 수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2033학년도부터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2040학년도에는 폐지하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평가원은 10일 오승걸 원장이 사임했다고 밝혔다. 오 원장은 “영어가 절대평가 취지에 부합하지 못해 수험생과 학부모님들께 심려를 끼쳐 드리고 입시에 혼란을 야기한 점에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오 원장은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년4개월 만에 직을 내려놨다. 수능 문항 오류가 아닌 난이도 조절 실패로 물러난 첫 사례다.

2026학년도 수능 영어 1등급 비중은 3.11%로 역대 최저치였다. 4% 내에 들면 1등급을 받는 상대평가 영역과 비교해도 비율이 낮아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영어는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최저등급)을 맞추는 데 사용된다. 현행 대입 제도는 수능 성적을 모르는 9월에 수시 지원 대학을 결정토록 한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 수시에서 최저등급을 충족하지 못해 탈락하는 수험생이 속출하는 구조다.

문항을 둘러싼 논란도 컸다. 국어에선 해당 분야를 평생 연구한 전문가들도 어려워하는 ‘괴물 지문’이 올해도 등장했다. 단순관점 이론을 다룬 3번과 칸트 철학을 다룬 17번은 각각 서울대와 포항공대 교수가 오류라고 주장하며 고교생 수준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영어에서는 원어민도 생소한 ‘컬처테인먼트’(문화+엔터테인먼트)란 단어가 논란을 일으켰다.

사교육으로 5지 선다형 문항에 단련된 상위권을 변별하려면 불가피한 출제란 지적도 있다. 사교육이 이런 문항에 적응하는 상품을 팔면 평가원이 더욱 괴물 같은 문항을 내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교육청은 이날 3단계 대입 개편안을 제안했다. 먼저 현 고1이 대상인 2028학년도에는 진로·융합 선택 과목의 내신 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한다. 서울 주요 대학에 40% 이상 정시로 뽑도록 한 정부 권고도 철회한다. 현 초등학교 5학년이 대상인 2033학년도가 2단계다. 고교 내신과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수능에 서·논술형 문항을 도입한다. 수시와 정시를 통합해 ‘수시 납치’ 최저기준 미충족 탈락 같은 고질적인 불확실성을 줄이고, 고3 2학기부터 파행되는 고교 교육과정도 정상화한다. 3단계는 2040학년도부터 수능을 폐지하고 고교 교육에 기반해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토록 한다.

정 교육감은 “2040학년도 학령인구는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학생의 성장 이력을 중심으로 하는 대입 개편 논의에 나서야 한다”며 “종합적인 제도 개혁이므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 도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