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는 왜 교회가 사회에 물의를 빚을 때마다 ‘일부의 탓’이라며 꼬리 자르기 식으로 대응하나” “사랑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동시에 불신 지옥을 외치는 이유는 뭔가”….
‘인류는 본질적으로 호모 렐리기오수스(종교적 인간)’란 전제 아래 교양의 관점으로 대중에게 기독교를 해설하는 신학자 김학철(사진)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에게 대학생들이 던진 질문이다.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K라운지에서 토론형 북콘서트로 열린 ‘국민일독 2회’는 김 교수의 신간 ‘교양으로 읽는 기독교’(복있는사람)를 중심으로 대학생 패널 10명이 기독교에 관한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고 답을 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패널은 꾸준히 신앙생활을 해 온 기독교인 5명과 최근 기독교에 관심을 두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구도자(求道者) 5명으로 구성됐다. 국민일보 인스타그램 ‘와이더미션’을 통해 신청한 일반 방청객 20여명은 이날 1시간 30분가량의 토론을 경청하고 질의응답과 책 사인회에도 참여했다.
비판 정신 잃은 종교, 구도자에 걸림돌
이날 김 교수는 ‘종교가 구도의 길에 도움이 되는가’ ‘기독교에 공감/동의하는 점은 무엇인가, 반대로 공감/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뭔가’ 등의 공통 질문을 제시했다.
교육학을 전공 중인 대학생이며 모태신앙인이라고 밝힌 김주영(23)씨는 “천지창조의 목적을 설명하는 기독교는 인간이 자신의 삶과 세상의 존재 의미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토론의 포문을 열었다. 반면 구도자 그룹에 속한 간호학 전공자 최하민(22)씨는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는 구도적 사고를 단념시킨다”고 반박했다. “구도의 자세로 종교에 의문을 품고 질문하면 천편일률적으로 정해진 답만을 내놓는다”는 이유였다. 이어 “이런 대응은 오히려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제한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발언 내내 의견을 메모하던 김 교수는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세계적 종교의 출발에는 비판 정신이 있다. 그렇기에 비판 정신을 잃은 종교는 그 가치가 없다”고 운을 뗐다. 그는 “자신의 믿음과 이해를 ‘메타인지’(사고에 대한 사고)하는 과정이 없는 종교는 건강하지 않다”며 “한국 개신교는 메타인지를 잃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교회가 사회 문제에 답을 내놓을 땐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살피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대에) 보고 들은 내용만 갖고 시대에 해답을 제시한다면 그 답은 배타적일 수밖에 없어서”다.
교회, 울분의 확대·재생산 멈춰야
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 중인 구도자 염제윤(24)씨는 기독교에 공감할 수 없는 점으로 “과오를 일부의 일탈로 치부하는 경향”을 꼽았다. 특히 “최근 한국 사회가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는데 한국교회는 이를 더 확대하는 역할을 한 거 같다”면서 한국 개신교의 정치참여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극히 일부의 행동일지라도 사회에 불편을 초래했으면 사과하는 게 맞는다고 보는데 개신교계는 꼬리 자르기 식으로 일관하는 듯하다”면서 “이는 기독교의 배타성과 교회 공동체의 폐쇄성이 만나 빚어진 필연적 결과 아니겠냐”고 꼬집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에 “꼬리 자르기가 맞다”면서도 “단일 체제가 아닌 개신교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여러분 대학에서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일부가 있다고 치자. 이들을 대신해 나머지 구성원이 사과해야 한다고 하면 응당 ‘우리가 왜 미안해야 하냐’란 반응이 나올 것”이라며 “게다가 개신교는 학교처럼 하나의 단체로 보기도 어렵다.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한국 개신교가 반공 성향을 띠는 것에 대해서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해방 이후 한국 개신교의 주류가 서북 지역 출신”이라며 “강제로 고향과 재산, 가족을 잃은 이들 마음엔 공산주의에 대한 깊은 분노와 울분이 서려 있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한국 근현대사와 결부된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분노를 우리 사회에 확대·재생산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김 교수는 “현 5060세대는 또 민주화 운동 당시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며 “이전 세대의 울분과 트라우마를 증폭하는 대신 아픔을 치유하는 데 앞장서는 한국 개신교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런 한국 개신교에 위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는 “한국 개신교계가 그간 의료와 문화, 교육 등 각 분야에서 한국 사회 발전에 여러 기여를 해온 건 명백한 사실”이라며 “이제는 반대로 사회 구성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고 했다. “현대사와 관련한 아픔이 워낙 많아 교회 내 증오라는 고름이 흐르고 있으니 이를 잘 회복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관심과 도움을 줬으면 한다”는 당부다.
협박, 복음 전파 수단 아냐
교단 간 분열과 ‘불신 지옥’에 관한 질문도 나왔다. 김 교수는 이에 “개신교 교단 분열사는 부끄러운 이전투구의 역사지만 교계엔 교회연합기구도 여럿 존재한다”면서 “이런 한국 개신교의 양상은 한국 사회와 꼭 닮았다”고 답했다. 이어 “교회와 사회가 닮았다는 사실은 비극이기도 하지만 한국 개신교의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선 “사후세계의 공간적 개념이 아닌 신과의 단절 여부에 관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천국은 신과 연합함으로써 최고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고 그 반대인 지옥에선 최악의 고통을 맛본다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옥의 두려움을 강조하는 게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아니다. (전도할 때) 무조건적 협박하는 대신 다르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믿음은 선물이다
방청객과의 질의응답에선 ‘삼위일체의 기독교 교양학적 해설’ ‘지성으로 회심하는 게 가능한지’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김 교수는 “삼위일체 신앙 자체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나 이것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단순하다”며 “이 세상의 근원에 사랑의 개념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랑이 근본이라는 이 믿음을 받아들이면 세상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고 했다.
인문학 등 지식을 통한 회심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통 기독교는 믿음의 사건을 ‘은혜의 사건’이라고 부른다”며 “부활과 성육신 등 종교적 현상에 대해 과학이나 인문학적으로 토론할 수 있겠으나 믿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런 측면에서 보면 신앙은 자기 노력의 결과가 아닌 일종의 선물”이라며 “선물 받은 믿음을 자기 우월성의 근거로 삼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고 말했다. 비종교인에게 신앙이 없는 걸 타박하는 태도는 어불성설이란 뜻이다.
실망 없이 기대해주길
김 교수는 한국 개신교에 대한 소회를 마지막으로 강연을 맺었다. 그는 “한국교회에 바라는 게 없다. 바라지 않아야 사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며 “부부를 포함해 부모와 자식 간에도 바라지 않아야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한국 개신교에 크게 실망한 이들이 적잖겠지만, 교회가 뭔가 해온 것도 있지 않으냐. 사랑의 시선으로, 실망하지 않는 눈으로 바라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직장인 이홍준(37)씨는 이날 만남을 통해 “믿음은 은혜임을 새기며 믿지 않는 이들과 소통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대학원생 염씨는 “‘바라는 게 없어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이 크게 와닿았다”며 “저 역시 대가 없이 믿음을 얻은 만큼 받을 걸 베푼다는 마음으로 교회와 세상을 사랑하려 한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