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장애인을 어떻게 ‘사량’했는지 함께 고민했으면”

입력 2025-12-13 03:00 수정 2025-12-13 11:13
곽상학(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목사와 자녀 은택 예진 은준 은찬이, 노연정 목사가 지난 7월 경기도 안양의 한 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노 목사 제공

지난 7일 경기도 안양시 안양제일교회 사랑부 예배실. 스피커에서 번갈아 흐르는 파도 소리와 나뭇잎 흔들리는 자연음에 맞춰 교사 10명과 학생 세 명이 서로 눈을 바라보며 동작을 이어갔다. 오는 크리스마스에 선보일 성탄극 ‘세 나무 이야기’ 연습으로 한창인 이들을 지켜보던 30여명의 학생들 눈빛도 즐거운 듯 반짝였다. 이날 모인 학생들은 모두 발달장애인 청소년과 청년들로, 사랑부는 이들과 함께 예배부터 일상까지 서로 돌보는 신앙 공동체다.

연습을 이끈 이는 4년째 사랑부를 맡고 있는 노연정(54) 목사다. “대사는 우리가 읽어줄게요. 우리 친구들은 몸으로만 표현해요.” 노 목사가 부드럽게 말하자 아이들은 긴장을 풀고 손짓과 몸짓을 이어갔다. 잘려나간 나무가 구유와 배, 십자가로 자리 바뀌는 이야기 속에서 교사와 아이들은 눈빛과 호흡으로 성탄의 의미를 빚어냈다. 노 목사는 “하나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심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며 “성탄을 앞두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경기도 안양제일교회 사랑부 예배실에서 사랑부 교사와 청소년·청년들이 함께 성탄 연극을 연습하고 있다. 노 목사 제공

자녀들 장애 품은 사랑으로

노 목사는 장애가 있는 딸과 입양한 아들 셋을 키워 온 네 자녀의 엄마다. 가슴으로 낳은 세 아이 중 두 아이도 장애를 갖고 있다. 다음세움선교회 대표인 남편 곽상학(54) 목사가 지난 6월부터 아내가 섬기는 교회 인근 평촌교회 사랑부 사역자로 헌신하기 시작한 것도 지적장애 아들을 돌본 경험과 무관치 않다. 가정 내에서 쌓아온 돌봄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교회 사랑부 사역으로 이어진 것이다. 11년간 교육부서를 섬기다 4년 전 사랑부 사역 제안을 받았다는 노 목사는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의 삶과 맞닿아 있어 하나님이 이곳으로 부르셨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중고등부 시절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해 온누리교회 청년부를 함께 다니며 다음세대 사역의 비전을 품었다. 결혼을 앞두고는 100일 동안 새벽기도를 하며 가정을 준비했던 두 사람이 처음부터 입양이나 장애인사역을 소망했던 건 아니다.

지금은 24살이 된 첫째 딸 예진이를 낳은 뒤 당연히 찾아올 줄 알았던 둘째가 10년 가까이 생기지 않으면서 두 사람은 입양을 생각했다. 홀트복지회를 찾아간 부부는 당시 보육원 전원을 앞두고 있던 생후 7개월의 은택(14)이를 처음 만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입양을 결심했다. 은택이 혼자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셋째 은찬(12)이를 맞았고, 넷째 은준(9)이도 잇달아 가족이 됐다.

그러나 세 아이는 저마다 다른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은택이는 영유아 시절부터 자폐 초기 증세를 보였고 은찬이는 6세에 중증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다. 뇌 운동신경 옆에 종양이 있는 은준이는 수술이 어려워 꾸준한 약물치료가 필요한데 2년 전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도 받았다. 사실 아이들의 어려움은 입양 당시 생모의 학대와 장애 가능성이 기록된 배경 보고서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곽 목사는 “아내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처음 본 아이를 끝까지 품겠다고 약속하고 (복지회를) 찾아갔기에 아이의 배경이 우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면서 “장애가 ‘극복해야 할 결함’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장애를 숨기거나 뛰어넘으려 하기 보단 아이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밝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일상을 돌보고, 치료와 교육의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노 목사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건강한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랐다”고 말했다.

자폐 증세가 있던 은택이가 거실을 수십 바퀴 도는 상동행동을 반복할 때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미술·놀이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노 목사는 “은택이는 이제 의료진도 놀랄 만큼 자폐 증상이 거의 사라졌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청소년으로 자랐다”면서 “두 동생도 꾸준한 미술심리치료와 가정의 돌봄 속에서 정서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노 목사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경기도 의왕에서 심리 미술교습소도 운영하고 있다.

첫째 딸 예진이의 경험도 가족에게는 큰 전환점이었다. 심한 척추측만증이 있었던 예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학교에 다닐 수 없을 정도가 돼 10년 전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고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해 유아특수교육과 기독교교육, 가정교육을 공부했고 현재 중등 가정교사로 근무하며 지역에 있는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다. 곽 목사는 “딸의 수술과 회복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집중 어려운 아이도 함께하는 예배

지난 4월 안양제일교회 예배당에서 물고기 분장을 한 사랑부 청년들이 ‘무지개 물고기’ 연극을 하는 모습. 노 목사 제공

30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 공부를 시작해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은 곽 목사는 20년간 국어교사로 일했던 교육전문가기도 하다. 유스코스타, 어린이 다니엘기도회 등 다음세대를 섬기는 일에 매진해 온 그이기에 아이들을 위한 예배에 대한 고민도 계속됐다. 특히 집중에 어려움이 있는 자녀들과 가정예배를 하면서 기존 예배 형식의 한계를 깨달은 곽 목사는 아내와 함께 ‘드라마 가정예배’ 책을 펴냈다. 그는 “짧거나 재미있어도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과거 국어 수업에서 사용하던 ‘대본 읽기’를 떠올려, 성경 이야기를 연극처럼 구성해 편안하고 재미있는 예배로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예배 후엔 끝말잇기, 스피드퀴즈 등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하는 2부 순서를 마련했다.

아빠 곽 목사의 시도는 적중했다. 지적장애가 심한 은찬이도 찬양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로 자랐다. 2시간 가까운 금요집회도 끝까지 함께할 정도다. 곽 목사는 “잠자리에서 ‘오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일까’를 묻고 짧게라도 기도하며 가정예배를 이어갔다”면서 일상의 평범한 대화를 신앙과 연결짓는 신앙 대화(Faith Talk)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오늘 날씨가 좋다’는 말 대신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하늘을 보니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일상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신앙과 연결하는 것이 가족의 믿음을 자라게 한다”고 설명했다.

“사랑은 생각하고 헤아리는 것”

한 아이를 키우기도 어려운 세상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가슴으로 품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노 목사는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실 때 온전한 가정이 세워진다”고 말했다. 내 힘으로 걸어온 것이 아니라는 고백이다. 그는 “세 아들이 듬직하게 자라며 엄마를 믿고 따르는 모습이 가장 큰 은혜”라며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키워주신다는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고, 실제로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주셨다”고 말했다.

곽 목사는 사랑의 본질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를 깊이 생각하고 헤아리는 의지의 영역”이라면서 “사랑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상대를 깊이 생각하고(思) 그 입장을 깊이 헤아리는(量) ‘사량’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교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기도 하다. 그는 “장애인을 동정이나 지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이 그들을 어떻게 사량(思量)하셨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목사는 한국교회가 장애인사역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가 장애인사역에 관심을 갖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편견이나 낯섦 때문에 멀게 느끼는 분들도 있다”며 “우리 안에서부터 인식 개선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곽 목사도 “사랑부 교사는 한 번 하면 10년 이상 봉사하는 경우가 많다. 사역자가 부족해서다”라며 “한국교회가 이들의 걸음을 함께 오래 지켜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양=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