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됐던 건 우원식 국회의장이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과도하게 막은 탓이 크다. 우 의장은 나 의원이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반대해 필리버스터에 나선 뒤 법안과 무관한 여당 비판을 한다는 이유로 10여분 만에 마이크를 껐다. 이후에도 마이크가 꺼지거나 켜지길 반복했고 정회도 선포됐다. 의장이 필리버스터를 막은 건 1964년 김대중 의원의 마이크가 꺼진 이후 61년 만이다. 그만큼 우 의장 행동은 이례적이고 당혹스러운 측면이 있다. 평소 ‘을 대변자’ ‘의회주의자’로 불렸던 그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필리버스터는 소수 의견을 보호하고 숙의 민주주의를 위한 합법적 저항권이다. 법안과 관계 없어 마이크를 껐다지만 이전에도 그런 발언 사례는 있었다. 헌법이나 소설을 낭독하는가 하면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알아듣지 못할 말을 횡설수설한 경우도 있었지만 막지는 않았다. 필리버스터가 단순히 메시지 발신 목적만 있는 게 아니어서다. 발언과 상관없이 본회의장 단상에서 버티는 것으로 저항의 뜻을 전달하고, 다수당 입법 횡포를 지체시키는 효과를 거두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다. 발언 내용은 국민이 판단하면 되고 너무 취지에 어긋난다면 당사자가 비판받으면 된다. 그럼에도 의장이 수차례 마이크를 끊으며 발언을 제한한 것은 필리버스터 의미를 지나치게 축소한 셈이다. 더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이와 함께 더불어민주당도 재적의원 60명 이상이 출석하지 않으면 필리버스터를 중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많이 떠나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키겠다는 의도다. 꼭 국민의힘만 아니라 60석 미만의 당은 다른 당 출석 없이는 발언을 아예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렇게 다수당 필요에 따라 아무 때나 떼거나 붙일 수 있는 찰흙 덩어리가 아니다. 당장 철회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