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예경)가 ‘2025년 미술시장 실태 조사(2024년 기준)’를 최근 공개했다. 예경은 2008년부터 화랑(갤러리), 경매회사, 아트페어 등에서 거래된 미술작품 규모를 파악해 매년 발표한다. 지난해 미술시장 규모는 약 6151억원으로 추계됐다. 전년에 비해 21.2% 줄었다.
미술시장은 코로나 유동성이 가져온 활황이 꺼진 뒤 부진을 면치 못한다. 서울옥션, 케이옥션 등 주요 경매회사에서의 올 들어 경매 낙찰률은 60%를 밑돌았다. 그나마 서울옥션의 11월 경매에서 국내 미술품 최고가를 다시 쓰게 한 ‘샤갈 효과’ 등으로 낙찰률이 70%를 넘어 고무적이다. 하지만 추세 전환을 확신하기는 이르다.
다시 예경의 미술시장 실태조사 얘기로 돌아가자. 미술시장의 세 주체는 생산자(작가), 중개자(갤러리, 경매회사 등), 수요자(개인, 기업, 정부)다. 예경의 실태조사는 수요자의 경우 건축물미술작품, 미술은행, 미술관 등 공공 영역만 파악한다. 민간 영역은 개인과 기업으로 나눌 수 있지만 별도 구분이 없다. 기업 고객 비중이 유의미하지 않아 그럴 수 있다.
미술시장진흥법이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정작 갤러리들은 순차적으로 시행하는 미술 서비스업(갤러리) 신고제(2026년 7월)나 ‘미술품 재판매에 대한 작가 보상금’(추급권·2027년 7월)이 미술시장을 위축시킬 거라 우려한다. 특히 추급권에 대한 걱정이 많다. 추급권은 작가가 맨 처음 작품을 판 뒤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치며 작품 가격이 올라도 상승분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작가 보호를 위해 1920년 프랑스가 최초로 도입한 후 영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로 퍼졌다.
갤러리들의 고민은 작가에게 보상금을 주려면 갤러리가 판매 내역을 당국에 알려야 한다는 점이다. 신분 노출을 꺼리는 컬렉터들이 구입을 주저하거나 음성적인 거래를 선호할 거라고 판단한다. 파급효과는 작품 가격에 대한 보상 요율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어 미리 걱정할 것은 없어 보인다. 또 작가들의 창작 권리를 강화하고, 작품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거래 내력을 확보할 수 있는 등 제도 시행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도 크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했으면 싶다. 미술시장에서 비중이 작은 기업 고객을 늘려서 수요자 규모를 키우는 건 어떨까. 이성훈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기업은 미술품을 샀다는 사실을 숨길 이유가 전혀 없다. 미술시장이 활성화되려면 법인도 작품을 활발히 사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미술품 구매자의 80%가 개인이기 때문에 법인의 미술 수요를 키우려면 선진국형으로 세제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에 작품 구매 유인은 충분히 있다. 로비의 그림 몇 점이 기업의 품격을 높임으로써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 마케팅에도 활용할 수 있다. 연 1억원씩 꾸준히 작품을 산다는 고경모 유진투자증권 대표는 “고객 접점용으로 미술품을 적극 활용한다. VIP 고객 라운지에 작품을 걸고 식사를 곁들인 행사를 한다”면서 “최고급 이미지를 주는 데 미술품만큼 좋은 건 없다. 장기적으로 투자도 된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업들이 미술품을 구입할 경우 1000만원까지만 손금(비용) 처리를 해준다. 권민 세무사는 “2019년 500만원에서 현재의 1000만원으로 한도가 상향됐는데, 그 사이 물가가 크게 올랐다. 개인 컬렉터의 경우 미술품 양도 가액 6000만원까지는 양도세를 물리지 않는 것과 비교해도 손금 처리 한도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유진투자증권의 사례가 확산되었으면 한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