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족’의 아파트·오피스텔·상가 등 부동산이 잇따라 경매 시장 매물로 나오고 있다. 초저금리·부동산폭등기에 자금력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대출을 받은 이들이 금리 인상 여파를 못 버티고 대출 연체가 누적된 결과다. 여기에 경기침체로 인한 자영업자 몰락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10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1월 전국에서 임의경매개시결정 등기가 신청된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상가 등)은 총 4만5324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5만1853건)보다는 줄었지만, 최근 5년 기준으로 보면 2번째로 높다. 2021~2024년 기간 임의경매개시결정 건수는 매년 2만2984→2만4101→3만9059→5만5424건으로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올해도 12월 신청 건수를 포함하면 5만건 안팎으로 전망된다.
임의경매는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일정 기간 이상 원금 및 이자를 갚지 못할 경우, 담보물권을 가진 채권자가 부동산을 법원 경매에 넘기는 절차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매한 사람이 통상 3개월 이상 원리금을 연체하면, 은행이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담보로 잡는 부동산을 경매에 넘긴다. 재판 없이 법원에 바로 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은행 등 금융기관이 채권자인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기간 경기부양을 위해 초저금리를 유지하던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2022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에 나섰고, 한국도 기준금리를 올리자 대출 상환 압박이 커졌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의 대출 연체가 누적되며 임의경매 매물이 급증했다.
올해 1~11월 지역별로는 경기 1만5072건, 부산 6297건, 서울 5210건, 인천 3132건, 경남 2867건, 대구 1506건 등 임의경매개시결정 등기가 신청됐다. 서울은 특히 지난달 593건으로 직전 월(284건)보다 2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경기(924→1433건), 인천(234→348건)도 대폭 늘었다.
이주현 지지옥션 전문위원은 “2020~2021년 저금리기에 과도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매매 시장에서 처분을 못 하니 경매 매물로 나오고 있다”며 “금리 인상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금리가 높은 상황이어서 경매 매물이 줄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비선호·외곽 지역은 가격도 많이 안 오르고 거래도 잘 안 돼 못 버티는 물량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은 향후 더 심각해질 수 있다. 2021년 저금리 시기에 5년 혼합형(대출 초기 5년간 고정금리 적용 후 변동금리로 전환) 상품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영끌족들이 내년부터 금리 재산정 시기를 맞으면서다. 대출상환 압박이 커질 전망이다.
경기침체로 인한 자영업 몰락도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 취약차주는 올해 2분기 기준 43만7000명으로 비중은 14.3%에 이른다. 취약차주는 금융기관 3곳 이상 대출자 중 저소득(하위 30%)이나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인 이들이다.
아파트 등 주택 담보 사업자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가 경기 악화로 한계 상황에 몰리면서 경매로 넘어가는 매물이 많다는 분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일반 샐러리맨들은 대출 이자가 늘어도 어떻게든 버티지만 자영업자는 다르다”며 “한계에 몰려 경매 매물로 나왔다면 생업 자체에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짚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