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기부의 가성비

입력 2025-12-11 00:38

기부를 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지만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다. 내가 살기도 힘든데 남 도울 여력이 없다는 사람은 솔직한 편이다. 어떤 이는 당당하게 기부를 거부하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내가 기부한 돈이 중간에 새고 정작 필요한 사람한테 가는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가끔 나오는 모금 단체의 부실 운영이나 직원들의 횡령 소식은 기부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의심을 키우기도 한다.

사실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국제구호단체에서 근무 경험을 가진 사람을 만났는데 흥미로운 사실 두 가지를 얘기했다. 간부들의 이전투구가 진저리가 날 정도였고, 상상외로 그의 연봉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일부 단체에만 해당되는 얘길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많은 단체들이 직접적인 구호비용 외에도 조직과 단체를 운영하거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많은 비용을 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요즘에는 매사 비용 대비 효과, 즉 가성비를 많이 따진다. 젊은층일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헌혈자 수가 2005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 수준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이런 분석이 나왔다. 저출생으로 10~20대 인구가 줄어든 데다 헌혈을 포함한 개인 봉사활동 실적이 대학입시에 반영되지 않도록 제도가 바뀐 영향도 있다고. 덧붙여 다른 분석도 가능하다. 헌혈은 원래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선의만으로 자신의 혈액을 내어주는 기부 행위다. 사람들은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하지만 지정 헌혈이 아닌 이상 그 대상자를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기부로서의 헌혈은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가성비가 좋지 않은 행위다.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내 기부금의 효율성을 따져 추천하는 단체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2007년 설립된 기브웰이라는 단체가 대표적이다. 생명 하나를 구하는 데 얼마가 드느냐가 평가 기준이다. 기브웰이 추천하는 단골은 말라리아 예방이나 치료를 위한 단체들이다. 모기로 전파되는 말라리아는 매년 60만명가량의 목숨을 앗아가고 대개 희생자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5세 이하 아동이다.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살충 처리된 모기장을 공급하는 ‘말라리아 예방 공동체’의 경우 모기장 1개에 6달러(약 8800원)의 비용이 발생하고, 한 생명을 구하는 데 5500달러(약 800만원)가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다. 기부금을 내면 그 돈으로 실제 모기장 몇 개를 구매하고 나누어 주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 모든 것에는 교환의 논리가 숨어 있다. 무언가를 주었을 때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물질적이든 고맙다는 말이든 대가를 기대한다. 교환의 논리는 모든 관계를 수단과 목적으로 판단한다. 모든 사람이 교환의 논리만을 따라 행동한다면 사회는 온전하게 굴러갈 수가 없다. 일본의 언어 철학자 지카우치 유타는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라는 책에서 교환의 논리만이 횡행하는 자본주의 빈틈을 메우는 개념으로 ‘증여’를 제시한다. 그가 정의하는 증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또는 그것의 이동’이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거저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깨닫지 못할 뿐, 사회로부터 대가 없이 받는 수많은 은혜(증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언가를 값없이 받고 있다는 ‘상상력’을 가진 사람만이 누군가에게 증여를 나눌 수 있다. 지카우치 유타는 증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색내지 않는’ 태도를 꼽는다. 증여에 생색이 들어가면 증여로 위장한 ‘교환’일 뿐이다. 혹시 기부를 생각하고 있다면 한번 새겨볼 말이다.

맹경환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