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방] 은퇴를 새로운 시작으로 바꾼 책방

입력 2025-12-13 00:31

평일 오후 서해안고속도로는 어김없이 막혔다. 어렵사리 집에 돌아와 한숨을 돌리고 단감부터 깎아 먹었다. “마을에 있는 감나무에서 딴 거라 모양은 없지만 맛있어요” 하더니 참말이다. 단맛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돌아가는 필자에게 친정엄마처럼 감 봉투를 건넨 사람은 ‘그림책꽃밭’를 운영하는 김미자 대표였다. 서울에서 살다 남편이 은퇴하자 아파트를 팔고 충남 당진 송악산 아래 마을로 귀촌해 책방을 시작했다. 부부가 살 집은 20평으로 아담하게, 하지만 책방은 40평으로 넓게 만들고, 정원도 가꾸고 있다. 책방에서 가장 가까운 기지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와도 20여분이 걸린다. 사실상 차가 없다면 올 수 없는 외진 동네다. 하지만 서해대교를 넘어 멀지 않으니 서울과 수도권에서 가깝다. 날이 좋은 계절이라면 외갓집에 가는 기분으로 방문하기 좋은 시골 책방이다.

‘그림책꽃밭’은 2019년 문을 열었으니 벌써 7년 차 그림책방이다. 문을 열자 높고 넓은 책방 안이 온통 그림책 세상이다. 넓은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손님을 맞이한다. 노련한 책방지기는 척 보면 안다는 듯 필자에게 “혼자 오셨어요?”라고 말을 걸었다. 몇 마디를 주고받자마자 시원시원한 성격의 김 대표가 “누구신데 이렇게 말이 잘 통하나. 이 근방에 산다면 모를 리가 없는데” 한다. 오래전 어딘가에서 김 대표와 잠시 만난 인연을 꺼내며 인사를 나눴다. 커피잔을 난로에 놓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곳에 앉아 있으니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를 만큼 한적하고 고요했다.

시골 마을에 있는 그림책방에 필자처럼 혼자 오는 이는 드물다. 대개는 그림책 마니아들이 함께 시간을 내 성지순례하듯 찾는다. 혹은 인근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견학 삼아 단체로 방문할 때도 있다. 봄이나 가을처럼 좋은 계절이면 소풍이 따로 없다. 책방에서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도시락도 준비해 먹고 마당에서 뛰어놀기도 한다. 책방은 층고가 무척 높은데, 2층을 다락방처럼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더없이 신나는 공간이다. 물론 어른이 와도 놀랄 만큼 김 대표가 그림책에 ‘미친’ 세월을 보여주는 서점이다. 그림책과 인형과 관련 소품이 구석구석 가득하다.

대를 이어 서점을 운영하는 ‘당진서점’의 안지미 대표는 필자에게 ‘그림책꽃밭’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점을 하는 저도 처음 갔을 때 샘이 날 만큼 예뻤어요.” 작은 도서관장을 했던 김 대표의 지난날을 몰라도 대번에 책방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낄 만하다. ‘그림책꽃밭’은 책방이자 한 사람이 평생을 꿈꾸어온 아지트 같은 곳이다.

동네책방을 시작하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김 대표처럼 뒤늦게 책방을 시작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은퇴를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만들고 싶은 이들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슴 뛰는 일을 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쉽지 않다. 혹 비슷한 생각을 한다면 누군가 열정으로 만들어낸 책방을 다녀오시라. 예를 들면 ‘그림책꽃밭’ 같은 곳.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