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동찬 (3) 여의도순복음교회 출석… 난생처음 ‘하늘의 세계’ 엿봐

입력 2025-12-12 03:03
박동찬(오른쪽 두 번째) 목사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제1회 전국 국민학교 태권도 개인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친구들과 찍은 기념사진.

청소년기에 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친구들과 어울릴 땐 활발하게 놀다가도 누군가 발표를 시키거나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쭈뼛거리며 열없는 미소를 짓곤 했다. 그런 성격이었던 내가 어른이 돼 많은 사람 앞에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된 것은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중학생 시절, 내 삶에 진하게 새겨진 무늬를 하나만 꼽자면 바로 신앙일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장로교회였던 성대교회를 떠나 우리 가족이 새롭게 정착한 곳은 여의도순복음교회였다(훗날 감리교회 목회자가 됐으니 장로교, 순복음, 감리교를 두루 경험하게 된 셈인데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 같다).

처음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갔을 땐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분위기가 그곳에 있었다. 곁눈으로나마 난생처음 ‘영(靈)의 세계’를 엿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장로교회에 다닐 땐 나이가 어렸던 탓에 하나님의 뜻을 되새기기보단 친구나 선생님과 어울리는 ‘교회 생활’을 즐기는 일에만 몰두했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면서 나는 비로소 ‘하늘의 세계’가 있음을 느끼게 됐다. 내 눈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이런 사실들은 나의 신앙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즈음 맞닥뜨린 성령 체험의 순간도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수련회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개회 예배 시간이었는데 그곳에 모인 친구들이 어찌나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데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드리다 어느 순간 방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입을 꾹 다물었는데도 방언이 쏟아졌다. 너무 무서워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가 미친 사람이 돼버린 건 아닐까. 집에 돌아와 이 사실을 알렸더니 어머니는 예상과 달리 웃음 띤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찬아, 걱정하지 마. 그게 다 성령의 은사야. 두려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내가 겪은 모든 것도 하나님이 나를 목회자로 훈련시키기 위해 준비해놓은 과정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초등학생 시절엔 내가 성경 암송에 몰두하게끔 하셨고, 중학생이 돼서는 말씀과 기도에 빠져 살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나의 신앙은 고등학교(서울 장훈고)에 진학한 뒤에도 커져만 갔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교회 출석을 한 번도 안 빼먹은 건 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불현듯 교회에 가기 싫어져 예배당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한강으로 돌렸고, 정처 없이 한강 둔치를 쏘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시작된 방황은 3주간 이어졌다. ‘교회 땡땡이’ 4주 차가 다가오니 교회에 가지 않는 게 얼마쯤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아, 사람들이 이렇게 교회와 멀어지게 되는구나.’

그러면서 동시에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회개의 마음을 한가득 담아 주님께 기도를 드렸다. “다시는 이런 짓을 벌이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주일만큼은 꼭 지키겠습니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