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5억명 넘는 사람이 찾는 유튜브엔 매일 수많은 채널이 만들어집니다.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최희승(47)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옆집 언니 최실장’의 특징 중 하나를 꼽자면 이것이다. 패션 유튜버가 소비를 부추긴다는 편견을 깨뜨린다는 것. 오히려 그는 구독자가 충동적으로 지갑을 여는 일을 말릴 때가 많다. 패션 업계 종사자로서 냉정한 평가도 곁들이곤 한다. “평소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으니 활용도가 낮아요” “유행의 정점이 지났으니 제값 주고 사기엔 아까운 아이템이에요”….
솔직한 조언을 능청스럽게 내뱉는 그의 매력에 빠진 구독자는 99만명이 넘는다. 최근 서울 성동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최씨는 “채널 초기부터 업계에서 까칠하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꼼꼼하게 제품을 추려왔다”며 “앞으로도 이런 고집은 꺾지 않겠다”고 말했다.
생활방식까지 담는 게 ‘스타일’
최씨는 “패션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스타일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자신의 신조를 소개했다. 패션은 변화하는 유행이자 흐름이지만 스타일은 개성과 취향의 집합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예로 든 이가 미국의 ‘셀럽’인 패리스 힐튼이었다.
“패리스 힐튼을 두고 패셔너블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만 스타일리시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패리스 힐튼이 유행하는 아이템을 잘 활용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녀의 취향이나 삶의 방식을 반영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씨가 꼽는 비법은 ‘경험’이었다. 다양한 아이템을 시도해보고 자신의 취향이나 온갖 상황에 맞는 아이템이 무엇인지 추려 나가는 과정이 반복될 때 본인만의 스타일이 완성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사람마다 체형이 다른 만큼 옷이든 모자든 신발이든 일단 착용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많은 패션 아이템은 살 필요는 없다. 매장 피팅룸에서 다양한 개성을 띤 옷들을 입어보는 경험만으로도 본인의 취향을 갖출 수 있다.
최씨의 스타일도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게 아니다. 그도 20대에는 ‘방황의 시기’를 거쳤다고 고백했다. 시크하면서도 위트가 느껴지는 그의 스타일은 20대 후반이 돼서야 완성됐다고 한다.
“스무 살 때 사진이 하나도 없어요. 그때는 구제가 유행이라 폭탄 머리도 해보고 유행에 맞춰 해봤는데 나중에 보니 어울리지 않아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사진을 다 지웠어요. 그렇게 하나씩 걸러가는 과정을 통해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계급장 뗀 ‘블라인드 테스트’ 호평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요즘 같은 불경기엔 패션 유튜버로서 부담도 크다. 제품을 소개하는 영상에는 소비를 부추긴다고 비판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최씨는 이런 비판에 반박하는 대신, ‘텅장’(비어있는 통장) 탓에 고통받는 구독자와의 공감을 택했다.
최근 주목받은 콘텐츠는 ‘블라인드 테스트’다. 가격이나 브랜드를 모두 가린 채 그가 직접 착용한 뒤 품질을 평가했다. 흰 반팔티, 여름 슬랙스, 가을 니트, 겨울 머플러 등을 다룬 이 테스트는 모두 수십만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구독자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는 도움이 되겠지만 최씨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콘텐츠다.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식의 부정적 평가를 해야 하는 제품이 반드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한 영상에는 그의 평가에 아쉬운 마음을 전하는 특정 브랜드 관계자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선입견 없이 제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획으로는 블라인드 테스트만 한 게 없다는 것이 최씨의 생각이다.
“옷을 만든 회사들에 미안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눈치가 보여요. 그걸 따지면 안 하는 게 맞죠. 하지만 제품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거로는 블라인드 테스트만 한 게 없어요. 다만 제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 평가는 주관적이라는 것도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트렌드를 아는 것은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트렌드의 정점을 지난 제품을 구매하면 그만큼 제품을 즐길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특히 요즘처럼 ‘메가 트렌드‘ 없이 여러 트렌드가 공존하는 시대에는 어떤 아이템이 유행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최씨의 설명이었다.
“트렌드를 소개하는 건 이와 관련된 제품을 다 사라는 뜻이 아니에요. 유행을 따라갈지 선택할 수 있게 돕는 거죠. 템포가 느린 사람들은 트렌드의 정점이 지난 아이템을 구매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아깝잖아요. 정점을 찍은 아이템은 소비를 자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옆집 언니 최실장’의 인기 코너 ‘지는 패션, 뜨는 패션’도 이런 취지에서 탄생했다. 명품 브랜드가 출시한 삭스 슈즈가 유행의 정점을 찍고 SPA 브랜드에서 유사한 상품을 출시하던 때였다. 분명 처음 삭스 슈즈를 봤을 때는 이상하다고 얘기했던 친구가 예뻐 보인다며 구매를 고민하고 있었다. “저한테 살까 말까 물어보길래 사지 말라고 했죠. 그때 이 기획이 떠올랐어요.”
“좋은 제품·소개하는 게 내 역할”
패션업계는 20·30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패션 유튜버 대다수도 이들을 타깃으로 삼는다. 하지만 최씨는 20·30대부터 40·50대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구독자의 절반은 20·30대지만, 40·50대도 30%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는 이들을 위해 가성비 제품부터 고가의 제품까지 모두 소개한다. 최씨는 패션의 모든 기준이 20·30대라고 했다. 40·50대를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도 20·30대 모델을 기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40·50대가 돼도 ‘중년 패션’은 입기 싫어해요. 20·30대가 ‘우리 옷’이라고 느끼는 게 40·50대의 옷이기도 해요. 흔히 기본템이라고 말하는 것은 20·30대도 찾고 40·50대도 마찬가지죠.”
최근 밈으로 자리 잡은 ‘영포티 패션’도 마찬가지다. 40대가 어려 보이기 위해 20·30대의 옷을 입는 게 아니라 그저 원래 입던 옷을 입을 뿐이다. 최씨는 “영포티는 참 억울한 단어”라며 “나이로 패션을 나누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하이패션 스타일리스트로 일해왔다. 패션 화보를 기획하는 게 주 업무였다. 커리어를 살려 자신만의 브랜드를 론칭할 생각은 없을까. 그는 이런 물음에 “제안은 많이 들어오지만 잘할 분야는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직접 제품을 출시해 판매하면 수입이 늘 수는 있지만 이런 일이 자신의 역할로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 그는 옷을 잘 만드는 디자이너나 브랜드를 소개하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자본이 부족하거나 마케팅 전략이 미흡해 고전하는 브랜드가 주목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다.
구독자 수에 비해 광고 영상이 많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광고가 늘면 광고가 아닌 다른 영상들도 광고로 오해받을 수 있어 내부적으로 광고 횟수를 제한해놓고 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구독자의 신뢰를 얻었다. “제가 더 유명해지면 브랜드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 있어서 더 공신력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이고 잘하고 싶은 역할이에요.”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