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내 ‘과거와의 단절’을 둘러싼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계엄 1주년이었던 지난 3일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라며 사과를 거부했지만, 대표가 직접 나서서 절연을 선언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히려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당 안팎에선 지방선거 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으나 장 대표는 “계획했던 타임라인에 따라 가고 있다”며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당내 거센 반발에도 장 대표가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요약된다. 우선 장 대표가 아무리 단호하게 절연을 선언한다 해도 실제로 절연이 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여당의 ‘내란 공세’에만 힘을 실어준다는 논리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12일 “권영세 비대위원장부터 김문수 대선후보, 김용태 비대위원장, 송언석 원내대표에 이르기까지 대표급들이 수차례 계엄에 대해 사죄했음에도 또 사죄하라고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했고, 당에 윤석열은 이제 없다는 선언도 했고, 김 후보가 전국을 돌면서 큰절까지 했다”며 “그런데 장 대표가 ‘절연하겠다’ 한 마디만 하면 한 방에 끊어진다고 보느냐”고 반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출당 조치도 전례로 거론된다. 한 중진 의원은 “자유한국당 시절 박근혜를 잘라냈더니 정작 민심은 ‘의리도 없는 당’이라고 받아들였다”며 “당을 떠받친 코어 지지층만 이탈하면서 지지율은 폭락했다”고 회고했다.
섣불리 사죄 메시지를 낼 경우 여권에서 ‘국민의힘이 내란을 인정했다’는 식의 공세가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지도부 관계자는 “사과를 해서 해결될 문제였다면 천 번도 넘게 사과했을 것”이라며 “계엄을 몰랐던 우리 당도 피해자다. 사과하더라도 윤 전 대통령이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두 번째로 ‘당대표는 당원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논리가 있다. 최근 당원 여론조사에서 약 70%가 ‘계엄 사과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송언석 원내대표가 사죄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의원 25명도 별도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며 “그럼 누군가는 계엄 배경에 민주당의 의회 폭거가 있었다는 점을 짚어주고, 당원들을 보듬는 메시지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역할 분담’을 했다는 지도부의 해명도 이와 맞닿아 있다. 장 대표는 당심을 대변했고, 송 원내대표는 민심을 고려해서 107명 의원을 대표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는 것이다. 계엄 1주년이 대표 취임 100일이었음에도 별도 기자회견 없이 페이스북으로만 메시지를 낸 것도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방편이었다고 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표는 대표의 역할과 고민이 있고,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라며 “107명 안에는 장 대표도 포함돼 있다. 대표 역시 계엄과 탄핵으로 국민께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장 대표는 계엄 사과나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으로 얻을 정치적 실익도 크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이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는지는 정치 고관여층의 이슈일 뿐 국민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며, 내년 지방선거의 판도를 뒤집을 만큼 폭발력을 가진 사안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 장 대표 측근은 “사죄하면 지선을 이기고 거부하면 패배하느냐”며 “국민의힘이 사과만 하면 표를 줄 텐데 안 해서 민주당 찍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장동혁이 사과했으니 이제 속 시원히 국민의힘 찍어줘야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이들은 또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차라리 이재명정부의 실정을 부각하는 대여 투쟁에 집중하는 게 지선 승리 가능성을 높이는 데 더 낫다는 계산이다. 특히 당 지도부는 최근 진행했던 장외집회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지지자가 많아졌다는 데 고무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장 대표가 ‘선결집 후확장’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그는 최근 보수 유튜브에 출연해 “저 나름대로 계획과 계기판이 있다”며 “지금까지는 생각했던 것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고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게 진정 맞는 길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 책임은 제가 오롯이 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지도부의 ‘사죄 불가론’이 설득력 있게 다가갈지는 미지수다. 특히 최근 ‘원조 친윤(친윤석열)’으로 꼽히는 3선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장 대표 면전에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라며 노선 변화를 촉구했다. 당내 최다선인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비상계엄은 명백히 잘못됐다”며 “정치의 방향은 당연히 민심인데, 자기의 편을 단결하는 과정에서 중도가 도망간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어게인 냄새가 나는 그런 방향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우진 이강민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