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자 지역을 통치하는 무장정파) 사이 전쟁이 시작된 지 2년이 넘었다. 지난 10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중재로 휴전이 이뤄졌지만 상황은 여전히 불안하다. 연내 트럼프 대통령을 의장으로 한 평화위원회가 출범 예정이라고 한다.
거룩한 땅이라 불리는 이 지역의 평화와 재건을 위해 한국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의 전쟁에 신학적 해석이나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분쟁의 구조와 양쪽의 서사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전략지역연구부장 인남식(사진) 교수를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났다. 그는 중동 지역 전문가로 지난 10월 ‘2023-2025 가자 전쟁의 평가와 함의’ 보고서를 썼다.
-휴전 조치는 잘 진행되고 있는가.
“수능 시험지를 받았을 때 쉬운 것부터 먼저 풀듯이, 3단계 중 1단계가 겨우 진행됐다. 더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다. 2단계인 하마스의 무장 해제와 이스라엘의 철군이다.”
가자 전쟁은 가자(팔레스타인 지역 중 이집트와 지중해에 접한 서남부 지역)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2023년 10월 7일 안식일 아침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가자는 폐허가 됐다. 휴전 협정에 서명하면서 1단계 조치인 교전 중단과 인질·수감자 석방은 어느 정도 실행했다. 2단계 조치인 누가 먼저 총을 내려놓느냐는 아직 풀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제 사회는 살라미 해법, 즉 단계적으로 하마스의 무기 반환과 이스라엘군의 후퇴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더 중요한 조치는 3단계인데 국제 안정화 군대를 구성해야 한다. 어느 나라가 참여할지도 산 넘어 산이다.”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은 양극단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는 기독교 종말론의 한 입장인 세대주의에 입각해 이스라엘 건국을 언약의 성취로 보는 이들이 있고, 유대 민족이 아니라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인 기독교 공동체를 강조하는 대체신학도 있다. 어디가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십자군 전쟁의 틀로 이방인을 징치(懲治)한다는 식의 접근은 답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자신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아랍국가와 전쟁을 겪었다. 이번 전쟁도 하마스가 선제공격했다.
“이스라엘은 4차례가 넘는 전쟁을 포함해 크고 작은 분쟁에 시달려 왔다. 안보가 중요한 나라다. 지금도 하마스를 뿌리 뽑기 전에는 전쟁을 멈출 수 없다는 여론이 주류다. 히브리대와 텔아비브대 등 대학 총장들이 공격 중단을 탄원하기도 했지만 여론을 바꾸지는 못했다. 하마스의 테러는 무도했고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러나 1200명의 죽음에 7만명에 이르는 죽음으로 보복하는 것이 과연 합당할까.”
-이스라엘 여론은 여전히 불안과 분노에 휩싸여 있는가.
“이스라엘을 강한 유대교 국가로 오해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거칠게 나누면 초정통파 등 강경 우파가 10%, 보수적 유대교인이 30%, 중도가 30%, 유발 하라리(‘사피엔스’ 작가) 같은 세속주의자가 30% 정도다. 중도파와 세속주의자들이 주도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가 정치적 생존을 위해 가장 오른쪽의 강경 세력과 손을 잡으면서 나라가 중세화되고 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표현을 쓰면서 전쟁을 종교적 당위로 만들었다.”
아말렉 전쟁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등장한다. 히브리 민족을 기습한 아말렉에 맞서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승리를 이끌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사울 왕이 완수하지 않아 버림을 당한 장면도 있다.
-팔레스타인은 어떤가. 하마스가 선제공격했지만, 가자는 이전부터 이스라엘의 봉쇄로 ‘지구에서 가장 큰 감옥’이라 불려 왔다.
“지금 가자 주민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영웅이다. 2년에 걸친 전쟁을 끝내는 휴전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2년 전 기습 당시엔 쾌거라 여겼을지 몰라도 이후 가자는 초토화되는 공격을 당했다. 하마스에 불만이 없지 않지만 하마스까지 없으면 무방비 상태가 되니 양가감정을 겪고 있다. 가자는 2007년부터 20년 가까이 하마스의 해방구였다. 인구 절반이 넘는 미성년자들은 하마스 통치 외에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미국과 한국교회는 친이스라엘 정서가 강하다.
“미국도 반유대주의가 심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망명 유대인들을 태운 세인트루이스호의 입항을 거부했다. 트루먼 대통령이 이스라엘 건국을 승인했을 때도 참모들은 반대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극적으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의 공공외교 전략이 주효했다. 미국 기독교인들에게 ‘유대교와 기독교는 하나’라는 서사를 심는 데 성공했다. 세대주의 신학을 활용해 미국 복음주의자들을 우군으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의 주류는 무신론자였다. 신앙이 아닌 생존 전략이었다. 이스라엘은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에서도 한국을 적극 지지한다. 같은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로서 우리에게 강한 연대감을 표시한다.”
-유엔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자 독립하는 해법을 결의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물으면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절반 이상은 회의적이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가능해야 하는 선택지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잔인함을 체험했고 가자는 초토화됐다. 분노의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유대인과 무슬림들이 만나 같이 교과서를 쓰는 공존의 실험을 하기도 한다.”
-성경의 땅이지만 지금은 복음이 가장 필요한 땅 같다.
“히브리대학에 머물 때 저녁 무렵 옛 예루살렘 도성을 산책하면서 예수님께서 이 땅을 향해 무슨 말씀을 하실까 생각했다.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셨던 그 눈물을 지금도 흘리고 계실 듯하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80대 할아버지 목수랑 하루 종일 대화한 적이 있다. 그분은 유대인이 하나도 밉지 않다고 했다. 2000년 동안 고생하고 나라 세우는 것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심정으로 우리를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종교가 정치의 도구가 되는 일이 가장 위험하다. 예수가 우리의 화평이 되어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는 에베소서 2장 14절의 말씀이 이뤄지길 나는 기도한다.”
김지방 박윤서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