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강은 강원도 평창군 북부 계방산에서 발원하는 남한강의 지류다. 평창읍을 지나 영월군 한반도면에서 주천강과 합류해 서강(西江)으로 흐른다. 영월읍 남쪽에서 동강(東江)과 합류해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직선거리는 약 60㎞에 불과하지만, 강이 흐르는 길이는 220㎞에 이를 만큼 심하게 굽이치는 사행하천이다. 덕분에 강변 곳곳에 이색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언제 가도 아름답지만, 눈 덮인 겨울 풍경은 특히 낭만적이다.
평창강이 영월과 처음 만나는 곳은 주천면 판운리다. 구름과 안개가 넓게 낀다고 해 ‘너룬’ 또는 ‘널운’이라 불리던 마을은 일제강점기 이후 정겨운 이름을 빼앗기고 ‘판운리’라 불리게 됐다. 이곳의 명물은 섶다리다. 가을걷이를 마치고 강물이 줄어들 무렵이면 평창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밤뒤마을과 미다리마을 사람들이 모여 다리를 놓았다. 끝이 Y자로 갈라진 튼튼한 나무를 기둥으로 박고 통나무를 얹어 뼈대를 만든 뒤 소나무 가지인 섶을 촘촘히 쌓는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흙을 두툼하게 덮어 바닥을 완성한다. 투박하지만 세상의 어떤 거창한 다리도 따라올 수 없는 그리움과 추억을 간직한 다리다. 주천면 겨울 설경의 백미로 꼽힌다.
섶다리는 밟으면 폭신하다. 섶이 옆으로 비죽비죽 튀어나와 있고,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다리를 건너면 미다리마을이다. 미다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여름 장마 전에 다리를 철거해야 했기 때문에 ‘다리가 없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미다리마을에는 길이가 150m에 이르는 멋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도 있다. 하늘 높이 곧게 뻗은 나무들이 노을을 받아 주황빛을 토해내는 풍경이 장관이다. 사설 캠핑장 안에 있는 이 길은 SNS에서 촬영 명소로 손꼽히는 핫플레이스다. 이 일대에서는 매년 11월 판운섶다리 축제도 열린다.
섶다리는 주천면 소재지 주천강에도 있다. 섶다리를 겹으로 질러놓은 쌍섶다리다. 쌍섶다리가 놓인 내력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월로 유배됐다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단종이 복권되자 조정에서는 원주로 부임하는 강원관찰사에게 단종이 묻힌 장릉을 참배토록 했다.
관찰사 일행은 원주~신림~주천~영월로 이어지는 여정 중, 이곳 주천에서 강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당시 관찰사가 타고 가던 가마는 사인교(四人轎)라 외다리로는 건널 수 없어 주민들이 두 개의 다리를 나란히 놓아줬다. 쌍섶다리를 건너가 장릉 참배를 마친 관찰사는 돌아가는 길에 다리를 놓느라 수고한 주민들에게 곡식을 나눠주고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주천강을 따라 상류로 오르면 무릉리와 도원리가 맞붙은 무릉도원면에 닿는다. 이곳의 걸작은 요선암이다. 포트홀(Pot Hole)이라 불리는 돌개구멍으로 유명한 장소다. 오랜 세월 강을 따라 흘러온 자갈과 모래가 화강암을 깎아내며 수많은 구멍을 만들고, 그 속에서 물이 소용돌이치며 둥근 홈이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것은 한쪽이 움푹해 절구와 같이 생겼고, 밥공기처럼 보이기도 하며, 용이 승천한 흔적처럼 구불구불 길게 패이기도 했다. 강변 암벽 꼭대기에는 요선암을 굽어보는 요선정이 자리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노닐 법한 정자다. 비바람에 굽어 자란 노송 너머로 펼쳐지는 요선암 일대 풍광이 장관이다.
평창강은 주천강과 만나기 직전 크게 휘돌아가며 한반도 지형을 빚어놓았다. 위쪽에서 달음질해 뻗은 산세가 백두대간을 닮았고, 동쪽의 벼랑은 동해안, 서쪽의 모래사장은 서해안을 똑 닮았다. 명성이 자자해지자 2009년 이일대 행정구역명이 서면에서 한반도면으로 바뀌었다. 2011년 국가 명승에 지정됐고, 2015년에는 생태 가치를 인정받아 람사르 습지로도 인증됐다.
영월읍 방절리 서강 변에는 선돌이 우뚝 서 있다. 마치 큰 칼로 절벽을 쪼개다 만 듯한 모습의 높이 70m 정도의 바위다. 고생대 석회암이 갈라진 틈을 따라 부서져 내리면서 기둥 모양으로 남게 된 것이다.
서강은 동강을 만나기 직전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를 지난다. 삼면이 강물에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은 험준한 봉우리로 막힌, 이른바 ‘육지 속의 섬’이다. 안쪽에는 단종이 머물던 어소(御所)가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영조 때 그 위치를 알리는 비석이 세워졌다. 민간인의 출입을 막기 위한 별도의 금표비도 함께 설치됐다.
여행메모
선돌 너머 문개실에 ‘더한옥헤리티지’
메밀 음식·곤드레밥·다슬기해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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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서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으로 향하면 중앙고속도로 신림나들목이 가장 가깝다. 판운리는 주천면 소재지에서 평창 방면으로 차로 약 10분 거리다. 주천면에는 현대미술 공간이자 복합예술공간인 ‘젊은달 와이파크’도 있다. 요선암은 인접한 무릉도원면에 있다.
한반도 지형 일대에는 유료 주차장이 넉넉하게 마련돼 있다. 주차장에서 800여m 거리에 있는 전망대가 한반도 지형과 선암마을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포토존이다. 20여분 동안 계단을 오르내리고 숲길을 걷는다.
선돌 건너편 문개실마을에는 종묘 정전을 모티브로 한 한옥 호텔 ‘더한옥헤리티지’가 지난 9월 개관했다. 총 14개 객실은 창밖의 사계절 풍경을 그대로 살려 한옥 고유의 미학을 담았다.
청령포 건너편에 있는 영월관광센터는 다양한 미디어 전시와 체험 공간, 로컬푸드 판매장, 카페, 기념품 가게를 갖춘 복합 편의시설이다. 가까운 곳에 단종이 묻힌 장릉이 있다.
영월 읍내 서부시장은 대표적인 먹거리 명소다. 메밀전병과 메밀전을 만들어 파는 전문점들이 몰려 있다. 곤드레밥 식당도 많다.
장릉 인근 골목에서는 보리밥과 손두부 등을 맛볼 수 있다. 다슬기해장국도 별미다. 주천면의 다하누촌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한우고기를 내놓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영월=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