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도시의 미래는 가상공간에서 결정된다

입력 2025-12-11 00:33

문화·관광 트렌드 좌우하는
OTT와 유튜브, 소셜미디어

SOC에 의존했던 도시 경쟁력
지금은 디지털 이미지가 핵심

네트워크 파워 약한 지방 도시
연계·경제권 공유로 극복해야

1990년대 학창 시절 서울시 고위 공무원 출신 강연자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서울시 정책을 아무리 홍보해도 시민 반응이 없었는데, 주말 드라마 주인공이 대사로 그 정책을 한마디 언급하자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주말 드라마 시청률이 폭발적이었던 지상파 시절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시대는 바뀌었으나 본질은 지금도 같다. 지상파에서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블로그·카페 등 소셜네트워크로 수단이 옮겨가고 있을 뿐, 예나 지금이나 미디어의 힘은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최근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티빙, 웨이브, 디즈니+ 등의 OTT 산업과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의 성장과 검색 플랫폼의 확산은 문화와 관광, 소비와 투자 판단에 직결되는 새로운 메가트렌드가 됐다. 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맛집을 찾거나 호텔을 고를 때 이용하던 SNS, 인터넷 블로그, 인터넷 검색은 이제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됐고, 그 이미지를 통해 어떤 도시는 성장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

그동안 도시의 경쟁력은 공항, 도로, 대학, 병원, 산업단지, 주거단지를 얼마나 갖췄는가로 평가됐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도시를 방문하기 전에 검색 플랫폼에서 도시 이름을 입력하고, 인터넷 블로그 후기나 SNS 영상을 먼저 본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도시의 디지털 이미지는 여행과 소비, 정주까지 영향을 주며 도시의 성패를 가른다.

도시의 미래는 가상공간에서 결정되는 시대가 됐다. 긍정적 콘텐츠는 도시의 매력을 올리며 관광 수요와 소비 창출로 이어진다. K팝과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확산은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하고 있다.

한때 준공업지역 노후 공장 이미지가 강했던 서울 성수동은 온라인에서 ‘핫플레이스’ ‘서울의 브루클린’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젊은 세대와 외국 관광객들로 붐비는 명소가 됐다. OTT를 통해 소개된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은 관광 패턴을 바꿔 놓으면서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 남산, 청계천, 낙산공원을 ‘디지털 성지순례’ 대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유튜브를 통해 확산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강남을 세계적으로 힙하고 부유한 이미지로 고착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OTT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되는 가상공간에서의 이미지 경쟁력이 도시의 성장 잠재력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디지털 기반의 도시 이미지 효과가 공간적으로 불균등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지역 정책은 인프라 개선 및 확충, 산업단지 조성, 생활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춰 왔다. 이는 여전히 중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인구감소 지역에서 추진된 수많은 지역정책에도 불구하고 청년 인구 유출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된 농산어촌이나 작은 도시에서 지역자원을 미디어 홍보로 알리고 방문 인구와 같은 ‘생활인구’를 늘리는 전략도 추진되고 있지만, 일시적 방문을 넘어 경제기반 형성이나 장기적 인구 유입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가상공간의 영향력은 사람, 자본, 산업, 콘텐츠가 모이는 곳에서 더욱 크게 증폭된다. 그리고 그곳은 대부분 대도시다.

SNS, OTT, 인터넷 검색 기반의 디지털 확산은 정보가 더 많이 노출된 곳으로 흐르고, 자본과 사람도 그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수도권은 이미 검색량, 게시물, 언론 노출 등에서 압도적 우위를 갖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네트워크 효과는 규모의 경제가 있는 수도권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며 이러한 효과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더 확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비수도권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수도권과 정면 대결을 벌이기보다 광역권 안에서 거점을 중심으로 주변 도시와 생활권과 경제권을 공유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거점 도시는 문화·관광 콘텐츠의 발신지이자 산업·교육·의료 중심지로 기능하며 청년층이 유입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한다.

인구감소 지역에서의 ‘생활인구’가 지속 방문과 장기 참여, 부분 정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광역권 단위에서 거점 도시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디지털 확산에 따른 네트워크 효과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비수도권의 경쟁력은 전국 1등이 아니라 권역 1등 도시를 키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명제
서울시립대 교수
도시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