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마약범 거짓말에 놀아난 ‘세관 수사 외압 의혹’

입력 2025-12-10 01:10
백해룡 경정이 9일 서울 송파구 동부지검 사건과에 ‘관세청 산하 인천공항본부세관, 김해세관, 서울본부세관과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인천지검’ 등 6곳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동부지검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합동수사단이 9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여러 의혹을 사실 무근으로 결론지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백 경정은 그동안 “세관원이 마약 밀수를 도왔다” “경찰청·관세청이 외압을 행사했다” “대통령실도 개입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내란 자금을 마련하려 마약 사업을 했다”는 주장을 폈다. 합수단에 따르면 이런 주장이 시작된 배경에는 말레이시아인 마약 밀수범의 거짓말이 있었다. 2023년 영등포서에 검거된 밀수범들은 조사 과정에서 말레이시아어로 말을 맞춰가며 “세관원이 에스코트해줬다”는 허위 진술을 했고, 이를 믿은 백 경정이 세관 수사에 나서면서 경찰 지휘라인 등과 충돌하자 외압 의혹을 꺼냈다는 것이다.

당시 영등포서 수사팀의 인천공항 현장조사 영상을 합수단이 확인한 결과 밀수범이 말레이시아어로 공범들에게 “그냥 연기해” 하며 허위 진술을 지시하는 장면이 버젓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어가 아닌 중국어 통역만 대동하고 조사를 벌여 눈앞에서 말을 맞추는 범인들에게 당한 거였다. “세관원이 도와줬다”는 밀수범 진술은 백 경정이 세관 수사에 나선 유일한 근거였다. 그것이 거짓이니 “세관 수사를 막으려 외압을 행사했다”는 주장은 아예 성립할 수 없어 합수단은 의혹이 제기된 이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마약범의 거짓말에 속은 경찰관이 지난 2년 동안 국회에서, 유튜브에서 일종의 ‘음모론’을 퍼뜨려온 셈이다.

진영 대결의 정치는 이를 더욱 증폭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사건을 윤석열정부를 공격할 소재로 삼아 작년 8월 국회 청문회를 열었다. 근거 없는 음모론에 스피커를 달아줬고 상설특검안도 통과시켰지만, 결국 이재명정부의 합수단에 의해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마약범의 거짓말에서 시작된 음모론에 대한민국이 놀아난 블랙코미디가 됐다.